- 출처 : 주간현대 (글 : 신완순)
- 신완순님은 현재 주간현대(주간신문 36면)에 고정역사칼럼을 연재중에 있습니다(1면 전체할애)
- 지도 등 그림은 운영자가 임의로 삽입하였습니다
- 단순참고 바랍니다
(천제(天帝)의 아들 고주몽과 광개토태왕)
우리는
일본의 독도문제와 중국의 동북공정
그리고 북한의 핵문제와 6자회담 등으로
여러 가지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들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들에 대한 우리의 대처가 안일하다는 것은
이미 역사칼럼 테마 2.
"중국이 노리는 동북공정의 실상과 대응책"에서 밝혔지만,
작년에 동북공정 문제가본격적으로 이슈화되었을 때
고구려의 옛 땅이었던 현 중국의 길림성 집안현 통구의 광개토태왕비에 관해서도
우리 국민들은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다만,
그 것을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즉흥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지금은 관심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
또한,
분명한 고구려의 옛 땅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유적들을 소개할 때도
그 지명을 중국식으로 표기하는 이중성을 보여줬다.
예를들면,
호태왕비가 있는 집안(集安)을 '지안'으로 통구(通溝)를 '통거우'로 하는 것 등이다.
1. 하늘(天帝)의 아들 고주몽
광개토태왕의 비문의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옛날 시조 추모왕이 북부여에서 나와 나라를 세웠는데
추모왕은 하느님(天帝)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녀이다.
알을 깨고 세상에 하강하여 성스러운 덕을 갖추신 임금이 되었으며
무리를 이끌고 부여 엄리대수를 따라 남쪽으로 순행을 하다가
나루터에 이르러 추모왕이
'나는 하늘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다.
나를 위하여 다리를 연결하라고 하니
거북이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연결하여
강을 건널 수 있게 되었으며,
비류곡 홀본의 서쪽에 성을 샇고 도읍을 건설하였다."
이는 고구려의 시조인 추모왕 혹은 동명성왕이라고 불리는
고주몽의 탄생과 고구려 개국에 관한 이야기이며,
중국의 25사 중에서 <북사(北史)>, <위서(魏書)>,<주서(周書)>에서도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으며
하백(河伯)의 딸이 태양에 감응하여 알을 낳아 고주몽이 태어났는데,
부여사람들이 그를 싫어하여 죽이려 하자 도망을 가다
물가에서 주몽이
"나는 태양의 아들(日子)이며, 하백의 외손(河伯外孫)이다"
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주몽이 스스로
천제(天帝)인 하느님과 태양의 아들이며
하백의 외손이라고 밝힌 것은 중국학자 채옹(蔡邕)이 그가 쓴
<독단獨斷>에서 천자(天子)에 관해 주석한 것을 보면
"천자란 호칭은 동이에서 시작하였다.
아버지는 하늘이고 어머니는 땅이다.
때문에 천자라고 한 것이다.(天子之號稱 始於東夷 父天母地 故曰天子)"
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주몽과 고구려의 정체성과 뿌리를 밝힌 것인데
<규원사화>의 조판기(肇判記)의 천지를 창조한 하느님인
환인(桓因)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며
환웅과 단군시대를 거쳐 북부여에서 정통 천손민족으로서
새로운 고구려를 건국하여 이를 계승하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고주몽인 추모왕의 연호가 다물(多勿)인 것은 이러한 정신적으로나
이념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통치지역 또한 과거의 그 것을 되찾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며, 찬란했던 환웅과 단군시대의 복원을 통하여
환인 즉 하느님의 나라를 구현하려는 이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위하여 부국강병에 주력하였다는 것은 '주몽'이라는 말에서 잘 나타난다.
'주몽'이라는 말은 고구려어로 활을 잘 쏘는 사람(善射, 선사)을 뜻한다고 하였다.
이는 고구려는 무예를 숭상하였으며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보듯
고구려 개마무사의 호방함과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며
광개토태왕이 군사를 이끌고 출진을 할 때에 군사들에게
어아지가(於阿之歌)를 부르게 하여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는데,
이는 고대시대부터 나라의 큰 경사나 행사가 있을 때 불렀던 노래로
우리 민족은 착한 마음인 활이 되고 악한 마음인 과녁을 뚫어 항상
굳은 마음으로 하느님을 노래하고 나라와 겨레가 영원무궁하도록 빌었다는
내용이다.
"바로 '주몽'이 되자는 것이다. "
'주몽'은 활을 잘 쏠 뿐 아니라 하느님에게 귀의하고
나라와 겨레를 지키며
사랑하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2. 광개토태왕의 영락대통일(永樂大統一)
고주몽이 건국의 이념으로 다물정신을 내세웠다면
이러한 다물정신을 실현한 사람이 바로 광개토태왕이다.
광개토태왕은 이름은 담덕이며 연호는 영락이다.
18세에 등극하여 39세에 생을 마치기까지 우리 배달민족의 대통합을 이룬 왕이다.
광개토태왕의 비문에서 보듯
고구려 역사상 그 강역을 가장 넓힌 왕으로서
한반도는 물론이고 일본열도 그리고 중원대륙까지도 평정을 하여
실질적인 배달민족의 대통일을 이룬 왕이다.
광개토태왕이 실질적인 대통일을 이룩하였다고 보는 이유는
백제와 신라를 정벌하여 고구려의 속민으로 삼았으며,
신라를 침범하는 왜구를 소탕하였고 동부여와 연해주를 정복하였고,
중원대륙으로 후연을 정벌하는 등
실질적인 과거 우리 겨레가 살던 지역을 하나로 아우르는 대통합을 이루었다.
광개토태왕이 양자강 이남지역까지 중원대륙을 평정하였다는 것은
다음의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광개토태왕의 비문에는 영락10년과 14년 사이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염성, 왜만왜궤성, 대 ...............구 진?수첨라인수병.
(.鹽城, 倭滿倭潰城, 大.........九盡??尖羅人戎兵)
또한,
십사년갑진이왜불궤침입대방계.....상우왕당요절탕자왜구궤패참살무수
(十四年甲辰而倭不軌侵入帶方界.....相遇王幢要截蕩刺倭寇潰敗斬煞無數)
이라고 되어 있는데,
영락 14년 갑진년(404년) 왜가 수시로 대방(帶方)경계를 침입하여
....서로 만나 왕이 왜구를 궤멸시켜 참살한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되어 있다.
위의 염성(鹽城)을 필자는 현 중국의 강소성의 염성시에 있는
염성(鹽城)으로 비정한다.
그 이유는 염성의 기록을 보면,
진(晉)나라 안제(安帝)년간(397~418년)에 성의 이름을 바꾸었으며
염성에 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명나라 영락16년(1418년)
왜구를 막고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벽돌로 성을 쌓았다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이는 명나라 시기가 아닌 고구려 광개토태왕 영락16년(406년)이 분명하다.
광개토태왕비에서 보이는 왜구는
한반도의 왜구로도 볼 수 있지만
필자는 대륙의 양자강 유역의 왜구로 보고 있으며
그러므로
일본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임나가 한반도 남부의 일부를 점령하여 지배하였다는
신묘(辛卯)년의 해석은 일고의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며,
그들이 현재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운영자 주) 강소성 염성 지도이다.
일본놈들은 고대 왜가 양자강에 7세기 이전에 진출하여 다스렸다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우리의 잘난 학자들만 왜는 한반도 남해를 지난 일본열도에 있었다고 믿는다
양자강 이남의 고대 왜(670년 일본으로 국호를 변경하기전)를 이해 못하면
평생 반도/식민사관에서 벗어나기 힘들것이다
(불쌍한 인생들...)
3. 배달역사에 우뚝 선 광개토태왕
대부분의 사람들이 광개토태왕을 평가를 할 때
그가 생전에 펼친 대외정복의 과정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올바른 역사적 평가나 인식이 아니다.
광개토태왕을 배달겨레의 대통합을 이룬 군주로 인식하고
그러한 틀 속에서 바라보아야 제대로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광개토태왕의 '영락대통일'이라 일컫는 배달겨레의 대통합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고구려의 건국이념인 다물정신(多勿精神)을 계승하여 완성하였다.
단군시대의 천하관을 계승하고 흩어져 사는 동이족의 고토회복을 통한
대통합을 이뤄 천손민족으로서의 정통성을 확립한 것이다.
이는
천제의 아들이며 하백의 외손이라 한 광개토태왕비문 첫머리에 잘 나타나 있으며
천하의 중심을 고구려라 생각한 표현의 확립이다.
둘째, '주몽정신'의 실현이다.
앞서 말한대로 '주몽'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의 뚯일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로서 그 뜻을 지상에 실현하고자 하였음을 나타낸다.
이는
대외통합에 나선 광개토태왕과 군사들이
일종의 천군(天軍)이라는 일종의 소명의식을 가진 것을 뜻하며
군대의 깃발로 사용한 삼족오와
우물 井 자의 기(旗)가 잘 나타내고 있다.
셋째, 숭무정신(崇武精神)과 신무기 개발의 완성이다.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개마무사(鎧馬武士, 세계최초로 기병이 탄 말에 쇠갑옷을 입힌 것)와
맥궁(貊弓)과 전차 그리고 뛰어난 철기의 무기들과 무사들의 행렬도는
당시의 고구려의 군사력이 천하제일의 신무기와 전술체제를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대통합의 의의와 정신은 분단국가를 사는 오늘날의 우리가 되살려야 할
중요하고도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며
우리의 역사와 정신을 깊이 헤아려서 광개토태왕이 했던 것처럼
또다시 배달겨레의 대통합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고구려 진출도)
(완)
- 신완순님은 현재 주간현대(주간신문 36면)에 고정역사칼럼을 연재중에 있습니다(1면 전체할애)
- 지도 등 그림은 운영자가 임의로 삽입하였습니다
- 단순참고 바랍니다
(천제(天帝)의 아들 고주몽과 광개토태왕)
우리는
일본의 독도문제와 중국의 동북공정
그리고 북한의 핵문제와 6자회담 등으로
여러 가지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들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들에 대한 우리의 대처가 안일하다는 것은
이미 역사칼럼 테마 2.
"중국이 노리는 동북공정의 실상과 대응책"에서 밝혔지만,
작년에 동북공정 문제가본격적으로 이슈화되었을 때
고구려의 옛 땅이었던 현 중국의 길림성 집안현 통구의 광개토태왕비에 관해서도
우리 국민들은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다만,
그 것을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즉흥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지금은 관심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
또한,
분명한 고구려의 옛 땅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유적들을 소개할 때도
그 지명을 중국식으로 표기하는 이중성을 보여줬다.
예를들면,
호태왕비가 있는 집안(集安)을 '지안'으로 통구(通溝)를 '통거우'로 하는 것 등이다.
1. 하늘(天帝)의 아들 고주몽
광개토태왕의 비문의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옛날 시조 추모왕이 북부여에서 나와 나라를 세웠는데
추모왕은 하느님(天帝)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녀이다.
알을 깨고 세상에 하강하여 성스러운 덕을 갖추신 임금이 되었으며
무리를 이끌고 부여 엄리대수를 따라 남쪽으로 순행을 하다가
나루터에 이르러 추모왕이
'나는 하늘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다.
나를 위하여 다리를 연결하라고 하니
거북이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연결하여
강을 건널 수 있게 되었으며,
비류곡 홀본의 서쪽에 성을 샇고 도읍을 건설하였다."
이는 고구려의 시조인 추모왕 혹은 동명성왕이라고 불리는
고주몽의 탄생과 고구려 개국에 관한 이야기이며,
중국의 25사 중에서 <북사(北史)>, <위서(魏書)>,<주서(周書)>에서도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으며
하백(河伯)의 딸이 태양에 감응하여 알을 낳아 고주몽이 태어났는데,
부여사람들이 그를 싫어하여 죽이려 하자 도망을 가다
물가에서 주몽이
"나는 태양의 아들(日子)이며, 하백의 외손(河伯外孫)이다"
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주몽이 스스로
천제(天帝)인 하느님과 태양의 아들이며
하백의 외손이라고 밝힌 것은 중국학자 채옹(蔡邕)이 그가 쓴
<독단獨斷>에서 천자(天子)에 관해 주석한 것을 보면
"천자란 호칭은 동이에서 시작하였다.
아버지는 하늘이고 어머니는 땅이다.
때문에 천자라고 한 것이다.(天子之號稱 始於東夷 父天母地 故曰天子)"
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주몽과 고구려의 정체성과 뿌리를 밝힌 것인데
<규원사화>의 조판기(肇判記)의 천지를 창조한 하느님인
환인(桓因)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며
환웅과 단군시대를 거쳐 북부여에서 정통 천손민족으로서
새로운 고구려를 건국하여 이를 계승하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고주몽인 추모왕의 연호가 다물(多勿)인 것은 이러한 정신적으로나
이념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통치지역 또한 과거의 그 것을 되찾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며, 찬란했던 환웅과 단군시대의 복원을 통하여
환인 즉 하느님의 나라를 구현하려는 이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위하여 부국강병에 주력하였다는 것은 '주몽'이라는 말에서 잘 나타난다.
'주몽'이라는 말은 고구려어로 활을 잘 쏘는 사람(善射, 선사)을 뜻한다고 하였다.
이는 고구려는 무예를 숭상하였으며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보듯
고구려 개마무사의 호방함과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며
광개토태왕이 군사를 이끌고 출진을 할 때에 군사들에게
어아지가(於阿之歌)를 부르게 하여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는데,
이는 고대시대부터 나라의 큰 경사나 행사가 있을 때 불렀던 노래로
우리 민족은 착한 마음인 활이 되고 악한 마음인 과녁을 뚫어 항상
굳은 마음으로 하느님을 노래하고 나라와 겨레가 영원무궁하도록 빌었다는
내용이다.
"바로 '주몽'이 되자는 것이다. "
'주몽'은 활을 잘 쏠 뿐 아니라 하느님에게 귀의하고
나라와 겨레를 지키며
사랑하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2. 광개토태왕의 영락대통일(永樂大統一)
고주몽이 건국의 이념으로 다물정신을 내세웠다면
이러한 다물정신을 실현한 사람이 바로 광개토태왕이다.
광개토태왕은 이름은 담덕이며 연호는 영락이다.
18세에 등극하여 39세에 생을 마치기까지 우리 배달민족의 대통합을 이룬 왕이다.
광개토태왕의 비문에서 보듯
고구려 역사상 그 강역을 가장 넓힌 왕으로서
한반도는 물론이고 일본열도 그리고 중원대륙까지도 평정을 하여
실질적인 배달민족의 대통일을 이룬 왕이다.
광개토태왕이 실질적인 대통일을 이룩하였다고 보는 이유는
백제와 신라를 정벌하여 고구려의 속민으로 삼았으며,
신라를 침범하는 왜구를 소탕하였고 동부여와 연해주를 정복하였고,
중원대륙으로 후연을 정벌하는 등
실질적인 과거 우리 겨레가 살던 지역을 하나로 아우르는 대통합을 이루었다.
광개토태왕이 양자강 이남지역까지 중원대륙을 평정하였다는 것은
다음의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광개토태왕의 비문에는 영락10년과 14년 사이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염성, 왜만왜궤성, 대 ...............구 진?수첨라인수병.
(.鹽城, 倭滿倭潰城, 大.........九盡??尖羅人戎兵)
또한,
십사년갑진이왜불궤침입대방계.....상우왕당요절탕자왜구궤패참살무수
(十四年甲辰而倭不軌侵入帶方界.....相遇王幢要截蕩刺倭寇潰敗斬煞無數)
이라고 되어 있는데,
영락 14년 갑진년(404년) 왜가 수시로 대방(帶方)경계를 침입하여
....서로 만나 왕이 왜구를 궤멸시켜 참살한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되어 있다.
위의 염성(鹽城)을 필자는 현 중국의 강소성의 염성시에 있는
염성(鹽城)으로 비정한다.
그 이유는 염성의 기록을 보면,
진(晉)나라 안제(安帝)년간(397~418년)에 성의 이름을 바꾸었으며
염성에 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명나라 영락16년(1418년)
왜구를 막고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벽돌로 성을 쌓았다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이는 명나라 시기가 아닌 고구려 광개토태왕 영락16년(406년)이 분명하다.
광개토태왕비에서 보이는 왜구는
한반도의 왜구로도 볼 수 있지만
필자는 대륙의 양자강 유역의 왜구로 보고 있으며
그러므로
일본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임나가 한반도 남부의 일부를 점령하여 지배하였다는
신묘(辛卯)년의 해석은 일고의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며,
그들이 현재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운영자 주) 강소성 염성 지도이다.
일본놈들은 고대 왜가 양자강에 7세기 이전에 진출하여 다스렸다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우리의 잘난 학자들만 왜는 한반도 남해를 지난 일본열도에 있었다고 믿는다
양자강 이남의 고대 왜(670년 일본으로 국호를 변경하기전)를 이해 못하면
평생 반도/식민사관에서 벗어나기 힘들것이다
(불쌍한 인생들...)
3. 배달역사에 우뚝 선 광개토태왕
대부분의 사람들이 광개토태왕을 평가를 할 때
그가 생전에 펼친 대외정복의 과정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올바른 역사적 평가나 인식이 아니다.
광개토태왕을 배달겨레의 대통합을 이룬 군주로 인식하고
그러한 틀 속에서 바라보아야 제대로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광개토태왕의 '영락대통일'이라 일컫는 배달겨레의 대통합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고구려의 건국이념인 다물정신(多勿精神)을 계승하여 완성하였다.
단군시대의 천하관을 계승하고 흩어져 사는 동이족의 고토회복을 통한
대통합을 이뤄 천손민족으로서의 정통성을 확립한 것이다.
이는
천제의 아들이며 하백의 외손이라 한 광개토태왕비문 첫머리에 잘 나타나 있으며
천하의 중심을 고구려라 생각한 표현의 확립이다.
둘째, '주몽정신'의 실현이다.
앞서 말한대로 '주몽'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의 뚯일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로서 그 뜻을 지상에 실현하고자 하였음을 나타낸다.
이는
대외통합에 나선 광개토태왕과 군사들이
일종의 천군(天軍)이라는 일종의 소명의식을 가진 것을 뜻하며
군대의 깃발로 사용한 삼족오와
우물 井 자의 기(旗)가 잘 나타내고 있다.
셋째, 숭무정신(崇武精神)과 신무기 개발의 완성이다.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개마무사(鎧馬武士, 세계최초로 기병이 탄 말에 쇠갑옷을 입힌 것)와
맥궁(貊弓)과 전차 그리고 뛰어난 철기의 무기들과 무사들의 행렬도는
당시의 고구려의 군사력이 천하제일의 신무기와 전술체제를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대통합의 의의와 정신은 분단국가를 사는 오늘날의 우리가 되살려야 할
중요하고도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며
우리의 역사와 정신을 깊이 헤아려서 광개토태왕이 했던 것처럼
또다시 배달겨레의 대통합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고구려 진출도)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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