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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인근 고대문명 중화모조(中華母祖) 여신상 복원 고조선 인근 고대문명 ‘중화모조’여신상 복원 중앙일보 | 기사입력 2008.06.20 01:19 | 최종수정 2008.06.20 02:38 [중앙일보 장세정] 5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여신(女神)의 두상(사진·上)을 사람의 얼굴로 복원(사진·下)했다고 중국 언론이 19일 보도했다. 특히 유물이 발굴된 곳은 고조선과도 관련 있는 랴오닝(遼寧) 뉴허량(牛河梁)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신석기 시대 말기 지금의 중국 동북지역에서 발달한 홍산문화(紅山文化)의 대표적 유적지인 이곳의 고대 문명은 한반도와 중국 북부지역 문화의 모태로 간주되고 있다. 중국형사경찰학원 자오청원(趙成文) 교수가 복원한 BC 3500년 무렵의 여신상은 현대 여성의 얼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신 두상은 함께 발굴된.. 더보기
조선시대 갑옷 복원품 원 출처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보기힘든 자료라 일단 올리고 본다. 우리나라 갑옷 자료란게 워낙 흔치 않다보니. 하긴 뭐 유물이 좀처럼 있어야지 뭐... -ㅆ-;; [ 기수와 궁수 ] 조선 초기에 쌔고샜다던 병과 기수(騎手:기마병)와 궁수(弓手)의 무장이다. 왼쪽의 기수가 활줄을 잘못건게 눈에 거슬리지만... 뭐 넘어가지. -_- 궁수는 뭐 워낙 한민족이 활에 심취한 겨레다 보니 그렇다치고 ^^ 기병은 조선초에 워낙 집약해 정착,농업국가로서는 드물게 보병보다 많았다고 한다. 조선초 전성기에는 2~3십만 단위로 병력을 증강시켜 양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기수의 경우는 무장이 저것보다 빵빵하다고. 편곤에 기창(騎槍)에 방패에 환도까지 찼다니 뭐... [ 조총수와 초관 ] 왼쪽은 임난후 조선 중후기의 주력보.. 더보기
갑주 - [송(宋)나라에서 청(淸)나라까지] 안녹산의 난을 시작으로 여러 절도사들의 난립이 계속되면서 당나라는 패망하고 송(宋)이 건국되었다. 이때의 송은 당나라가 주변 민족과의 난잡한 교류로 망했다고 보고, 철저하게 제한된 국외무역을 중심으로 내치에 힘쓰려 했다. 이것은 여러나라들의 중원 유입을 막아야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송나라 특유의 방어식 국방정책으로 실현되었다. 이것으로 송나라때 중국의 갑주는 절정에 달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맨 위의 것은 무경총요라는 사서에 나오는 송나라의 갑주 "보인갑"으로, 갑엽을 가죽끈과 갑정으로 엮은 개갑이며, 거의 전신을 덮어 중국의 풀플레이트아머라고 비할수 있을정도며, 방호력도 최상이다. 단점이라면 거의 20킬로는 나가는 무게가 흠. 특이한 것은, 송대의 중국식 갑주가 우리나라 문화에 어느정도 영향.. 더보기
갑주 - [한(漢)나라부터 당(唐)나라까지] 진의 멸망이후 중국은 유방이 세운 한(漢)이 어언 2백여년 간을 통치하게된다. 한나라는 초기에 기마민족 흉노의 침공을 받고 사실상 흉노에게 굴복하는 치욕을 겪는데,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한무제가 즉위한 후 흉노에 항전하면서 기병의 효율성을 깨닫게 된다. 전국시대를 호령하던 전차의 시대는 이로써 막을 내리는데, 이 과정 후 한나라의 갑주는 다분히 북방계 갑주의 특징을 이어받은 모습을 보인다. 위는 한나라 멸망이 다가온 삼국시대 당시의 갑주다. 삼국지 연의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의 경우 실망을 금치 못할 것 같다 -ㅅ- 기본적으로 한대와 차이가 없다. 여담이지만 삼국지에 나오는 무기류는 작가 나관중이 삼국지를 집필하던 시대인 원,명때의 무구 들이다.(관우는 언월도는 명나라때나 생겨난다) 후한의 멸망후 사.. 더보기
갑주 - [하(夏)나라부터 진(秦)까지] 은(殷), 주(周)이전의 고대국가 하나라때 쯤의 갑주라고 한다. 사실 하나라의 존재는 유물이 아직 밝혀진 바없으나 중국의 어거지 역사공정으로 인해 억지로 역사에 편입되었다. -ㅅ- 아마 하나라가 없었다면, 위의 갑주는 은나라 이전 연맹국가 시대의 것으로 보인다. 고대 남방의 보편적인 복식으로, 위아래 구분이 없고 통으로 된 일체형의 복장이다. 지금의 중국 갑주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며, 남방풍의 색채가 아주 이국적으로 보인다. 은나라의갑주다. 상(商)나라 라고도 한다. 실질적인 유적의 발견으로 따지자면 중국 최초의 왕조다. 연맹국가 시대 이전과의 차이를 보자면, 북방의 영향으로 바지를 입기 시작했고 저고리와 바지로 복식이 나뉘었다는 것이다. 위의 인물은 제후나 왕인듯한데, 아직까지 갑주는 의장용의 성격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