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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南齊書 列傳


                                     
                      南齊書  列傳 (남제서 열전)
 
중국 남조(南朝) 제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책. 양(梁)의 소자현(蕭子顯)이 썼다. 현행본은 기(紀) 8권, 지(志) 11권, 열전(列傳) 40권으로 되어 있다. 소실된 부분이 있다.
南齊書卷五十八
列傳第三十九
東南夷: 高麗國·百濟國·加羅國·倭國.
高麗國(고려국 :고구려)
<東夷><高麗國>, 西與<魏虜>接界. <宋>末, <高麗王><樂浪公><高璉>爲使持節·散騎常侍·都督<營><平>二州諸軍事·車騎大將軍·開府儀同三司. <太祖><建元>元年, 進號驃騎大將軍./$按《高帝紀》繫此事於<建元>二年四月.$/ 三年, 遣使貢獻, 乘舶汎海, 使驛常通, 亦使<魏虜>, 然彊盛不受制.

'동이'의 '고려국'은 서쪽으로 '위노'와 경계하고 있다. '송'말에 '고려왕 낙랑공 고련'을 사지절 산기상시 도독 영 평이주 제군사 거기대장군 개부의동삼사로 삼았다. '태조''건원' 원년 표기대장군으로 승진하였다. 삼년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받치고, 배를 타고 바다로 가서 역참을 통하여 항시 통하였다. 역시 '위노'에 사신을 통하니, 강성해져서 제도를 받지 않았다.

虜置諸國使邸, <齊>使第一, <高麗>次之. <永明>七年, 平南參軍<顔幼明>·冗從僕射<劉思斅>使虜. 虜元會, 與<高麗>使相次. <幼明>謂僞主客郞<裴叔令>曰: [我等銜命上<華>, 來造卿國. 所爲抗敵, 在乎一<魏>. 自餘外<夷>, 理不得望我 塵. 況<東夷>小<貊>, 臣屬朝廷, 今日乃敢與我 踵.] <思斅>謂僞南部尙書<李思沖>曰: [我聖朝處<魏>使, 未嘗與小國列, 卿亦應知.] <思沖>曰: [實如此. 但主副不得升殿耳. 此閒坐起甚高, 足以相報.] <思斅>曰:[<李道固>昔使, 正以衣冠致隔耳. <魏國>必纓冕而至, 豈容見黜.] <幼明>又謂虜主曰: [二國相亞, 唯<齊>與<魏>. 邊境小<狄>, 敢 臣 .]

'노'에서는 여러나라의 사신을 집에 두었는데, '제'가 첫째이고, '고려'가 다음이었다. '영명'칠년 평남참군 '안유명'과 용종복사 '유사효'를 '위노'에 보냈는데, '위노'도 '원회'를 보내와 '고려'와 서로 엇갈렸다. '유명'이 위주객랑 '배숙명'에게 이르기를 나와 다른 사람이 중국의 명을 받들어 경의 나라에 온 것은 적을 막고자 함이니, '위'가 여기에 있음이다. 스스로 나머지 바깥의 이들은 먼지가 일어나듯이 얻을 려고 바라지 않아도 다스리니, 하물며 동이의 소맥이야 신하로 조정에 속하게 되니, 오늘에서야 감히 내가 이른것입니다. 하였다. '사효'가 남부상서 '이사충'에게 말하길 나의 성조가 '위'의 사산에게 일찍이 소국처럼 대하지 않음은 경도 역시 알 것이다. 하였다. '사충'이 말하길 실로 그러하다. 다만 주와 부가 임금의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그  앉고 일어섬의 차이가 심히 높으니 서로 아는 것으로 그친 것이다. 하니 '사효'가 말하길 '이도고'가 옛날 사신이었을 때 의관을 바로하고 갔는데, '위국'에서는 반드시 갓끈을 늘여뜨리니, 어찌 얼굴을 보는데 물리치지 않겠는가? '유명'이 또 '노주'에게 말하길 두나라는 서로 비슷하니 오직 '제'와 '위'와 친하다. 변방의 작은 오랑캐로 감히 이르러 신하로써 따른다. 하였다.

<高麗>俗服窮袴, 冠折風一梁, 謂之 . 知讀《五經》. 使人在京師, 中書郞<王融>戱之曰: [服之不衷, 身之災也. 頭上定是何物?] 答曰:[此卽古弁之遺像也.]
'고려'는 풍속에 옷은 궁고를 입고, 관은 절풍하나를 쓴는데, 이를 책이라 한다. '오경'을 알고 있다. 사신이 서울에 있어 중서랑 '왕융'이 이를 놀리며 말하길 옷입는데 정성스러움이 없으면, 몸에 재앙이 온다. 머리위에 있는 것은 어떤 물건인가? 하니 답하여 말하길 이것은 곧 옛부터 내려 오는 고깔이 남은 것입니다. 하였다.

<高璉>年百餘歲卒. <隆昌>元年, 以<高麗王><樂浪公><高雲>爲使持節·散騎常侍·都督<營><平>二州諸軍事·征東大將軍·<高麗王>·<樂浪公>. <建武>三年,-原闕/$ 此下缺一頁, 脫《高麗傳》之下半篇,《百濟傳》之上半篇, 各本同. 原本每頁十八行, 每行十八字. 按《元龜》九百六十八:[<明帝><建武>三年, <高麗王>·<樂浪公>遣使貢獻.]《明帝紀》不載, 當亦爲《高麗傳》缺頁中佚文. 又《建康實錄》<南齊>《高麗傳》有:[其官位加(?)長史·司馬·參軍之屬. 拜則申一脚, 坐則 , 行則走, 以爲恭敬. 國有銀山, 採爲貨,  人參貂皮. 重<中國>綵 , 丈夫衣之. 亦重虎皮.] 疑亦《南齊書》[高麗傳]缺頁中佚文也. 又《元龜》九百六十三:[<齊高帝><建元>二年三月, <百濟王><牟都>遣使貢獻. 詔曰:{寶命維新, 澤被絶域. <牟都>世藩東表, 守職遐外, 可卽授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鎭東大將軍.}] 當亦爲《百濟傳》缺頁中佚文.$/

'고련'이 백여세에 죽었다. '융창'원년에 '고려왕 낙랑공 고운'을 사지절 산기상시 도독 영평 이주 제군사 정동대장군 고려왕 낙랑공으로 삼았다. '건무' 삼년 (이 밑의 글자는 파본으로 알수 없다.)
百濟國(백제국)
報功勞勤, 實存名烈. 假行寧朔將軍臣<姐瑾>等四人, 振竭忠 , 攘除國難, 志勇果毅, 等威名將,/$[威]原 [截], 各本不 , 今改正.$/ 可謂 城, 固蕃社稷, 論功料勤, 宜在甄顯. 今依例輒假行職. 伏願恩愍, 聽除所假. 寧朔將軍·<面中王><姐瑾>, 歷贊時務, 武功竝列, 今假行冠軍將軍·都將軍·<都漢王>. 建威將軍·<八中侯><餘古>, 弱冠輔佐, 忠 夙著, 今假行寧朔將軍·<阿錯王>. 建威將軍<餘歷>, 忠款有素, 文武列顯, 今假行龍 將軍·<邁盧王>. 廣武將軍<餘固>, 忠 時務, 光宣國政, 今假行建威將軍·<弗斯侯>.]

(백제전 앞부분은 잃어 버렸다.) .... 공과 힘써 부지런함으로 값으니 힘찬 이름이 있다. 행영삭장군 신 '저근'등 네명이 충성으로 떨치고 일어나, 나라의 어려움을 헤결하였다. 뜻과 용맹함이 위엄으로 이름있는 장수라 할 만하니, 가히 나라를 덮었다 한다. 사직이 번성하고 공을 논하고 근면함에 마땅히 분명히 들어내야 한다. 이제 법칙대로 가행직을 주려 하오니, 엎드려 원하옵건데 은혜로 불쌍히 여기어, 청을 받아 주시옵소서. 행영삭장군 '면중왕 저근'은 급한일을 이끌고 무공도 아울러 있으니, 이에 관군장군 도장군 '도한왕'을 삼고, 건위장군 팔중후 '여고'는 어릴때부터 보좌함과 충성스러움이 분명하니, 이제 행영삭장군 '아삭왕'을 삼고, 건위장군 '여력'은 충성과 정성이 명백하고 문무가 현저하니 이에 행용양장군 '매로왕'으로 삼으며, 광무장군 '여고'는 충성과 시무로 국정을 밝게 이끄니 행건위장군 '불사후'로 삼으십시오. 하였다.

<牟大>又表曰: /$按[牟大]《通志》及《元龜》 作[牟太]. 又《元龜》九百六十三:[<齊武帝><永明>八年正月, <百濟王><牟太>遣使上表, 遣謁僕射<孫副>策命], 知上此表在<永明>八年正月也.$/[臣所遣行建威將軍·<廣陽>太守·兼長史臣<高達>, 行建威將軍·<朝鮮>太守·兼司馬臣<楊茂>, 行宣威將軍·兼參軍臣<會邁>等三人, 志行淸亮, 忠款夙著. 往<泰始>中,/$[泰始]原 [太始], 各本  , 今改正.$/ 比使<宋朝>, 今任臣使, 冒涉波險, 尋其至 , 宜在進爵, 謹依先例, 各假行職. 且玄澤靈休, 萬里所企, 況親趾天庭, 乃不蒙賴. 伏願天監特愍除正. 達邊 夙著, 勤勞公務, 今假行龍 將軍·<帶方>太守. <茂>志行淸壹, 公務不廢, 今假行建威將軍·<廣陵>太守. (萬)<[邁]>執志周密,/$據南監本·殿本·局本改. 按<邁>卽上所云之<會邁>也.$/ 屢致勤 , 今假行廣武將軍·<淸河>太守.] 詔可, 竝賜軍號, 除太守. 爲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鎭東大將軍./$按此句上有奪文.$/ 使兼謁者僕射<孫副>策命<大>襲亡祖父<牟都>爲<百濟王>. 曰: [於戱! 惟爾世襲忠懃, 誠著遐表, 滄路肅澄, 要貢無替. 式循 典, 用纂顯命. 往欽哉! 其敬膺休業, 可不愼歟! 制詔行都督<百濟>諸軍事·鎭東大將軍<百濟王><牟大>今以<大>襲祖父<牟都>爲<百濟王>, 卽位章綬等玉銅虎竹符四./$按此句疑有脫誤.$/ [王]其拜受,/$據南監本·殿本·局本補.$/ 不亦休乎!]
'모대'가 또 표를 올려 말하길 신이 행건위장군 광양태수 겸장사인 신 '고달'과 행건위장군 조선태수 겸사마 신 '양무', 행선위장군 겸참군 신 '회만'등 삼인을 사신으로 보내니 뜻과 행동이 맑고 충성스러움이 분명합니다. '태시'중에 '송조'에 사신으로 가고, 이제 신의 사신으로 험한 바다를 무릅써, 그 지극함으로 찾으니, 마땅히 작위를 내리시어, 삼가 먼저의 법칙대로 각각 행직을 수여하시옵소서. 또한 현택영휴(?)하여 만리를 가는데도 이에 조정의 입음이 없었습니다. 업드려 원하옵시는 하늘을 살피어 근심을 바로 잡아 주시옵서서 '달'은 일찍이 본받을 만 함이 뚜렸하고, 부지런히 공무에 노력하니, 이제 행용양장군 대방태수를 삼으시고, '무'는 뜻과 행실이 맑고 공무에 그침이 없으니 행건위장군 광을태수로 삼고, '만'은 뜻을 지킴이 두루 그윽하고, 부지런함과 본받을만 함이 있은니 행광무장군 청하태수로 삼으시옵소서 하니, 조서를 내려 가히 옳다 하고 군호를 내리시고 태수를 제수하였다. 사지절 도독 백제 제군사 진동대장군으로 삼고 부알자인 복사 '손부'에게 명하여 '대'를 죽은 조부 '모도'를 계승하여 '백제왕'으로 삼았다. 이에 말하길 오호라! 너의 대를 이은 충절을 생각하니 정성이 분명하고 멀리서도 나타나니 바닷길이 맑아졌다. 공물을 받침에 버릴것이 없다. 떳떳한 법을 잘 지키고 나타난 명령을 받들도록 모두 힘쓸지어다. 공경히 아름다운 사업을 지킬 것이니 어찌 삼가할 일이 아니냐  조서를 내려 행도독 백제제군사 진동장군 백제왕 '모대'로 하니 이제 '대'는 죽은 조부 모도를 계승하여 백제왕을 삼는다. 자리를 나타내는 글과 인수등과 옥,동,호,죽부 네 개를(뒤는 탈자)보내니 왕은 이것을 절하고 받도록 하라. 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느냐! 했다.

是歲, <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 入其界, <牟大>遣將<沙法名>·<?首流>·<解禮昆>·<木干那>率衆襲擊虜軍, 大破之. <建武>二年, <牟大>遣使上表曰: [臣自昔受封, 世被朝榮,  荷節鉞, 剋攘列 . 往<姐瑾>等竝蒙光除, 臣庶咸泰. 去庚午年, <  >弗悛, 擧兵深逼. 臣遣<沙法名>等領軍逆討, 宵襲霆擊, <匈>梨張惶,/$[梨]南監本作[ ].《漢書》[匈奴傳], 其國稱單于曰 ?孤塗單于. <匈奴>謂天爲 ?, 謂子爲孤塗, 單于者, 廣大之貌也. <匈>?猶言<匈奴>單于, ??通.$/ 崩若海蕩. 乘奔追斬,  尸丹野. 由是 其銳氣, 鯨暴韜凶. 今邦宇謐靜, 實<名>等之略, 尋其功勳, 宜在 顯. 今假<沙法名>行征虜將軍·<邁羅王>, <?首流>爲行安國將軍·< 中王>, <解禮昆>爲行武威將軍·<弗中侯>, <木干那>前有軍功, 又拔臺舫, 爲行廣威將軍·<面中侯>. 伏願天恩特愍聽除.] 又表曰: [臣所遣行龍 將軍·<樂浪>太守兼長史臣<慕遺>, 行建武將軍·<城陽>太守兼司馬臣<王茂>, 兼參軍·行振武將軍·<朝鮮>太守臣<張塞>, 行揚武將軍<陳明>, 在官忘私, 唯公是務, 見危授命, 蹈難弗顧. 今任臣使, 冒涉波險, 盡其至誠. 實宜進爵, 各假行署. 伏願聖朝特賜除正.] 詔可, 竝賜軍號.

이 해에 '위노'가 기병 수십만으로 '백제'를 공격하여 그 경계에 들어가니, '모대'가 장수 <사법명>·<?수류>·<해례곤>·<목간나>를 보내어 '노'군을 공격하여 크게 이를 깨뜨렸다. '건무'이년 '모대'가 사신을 보내어 표를 올려 말하길 신은 옛부터 봉함을 받아 대대로 조정의 영화를 입고, 절과 부인 분에 넘치는 것을 받아 오랑캐를 물리치었습니다. '저근'등이 가서 광택을 입고, 신은 두루 평안합니다. 경오년에 가서 '험윤'이 깨닫지 못하고, 병사를 내어 깊이 쳐들어 오니, 신이 '사법명'등 군사로 토벌하고, 야간에 번개같이 엄습하니 '흉'의 이장이 두려워 하고 무너저 바다로 쓸어버렸다. 달아나는 것을 베어 죽은 시체가 들을 붉게 물들였다. 이로말미암아 그 예기를 꺽으니, 흉폭함을 잡았다. 이제 나라가 조용해지니 실로 '명'등의 다스림이니, 그 공훈을 생각하여 칭찬함이 마땅하다. 이제 '사법명'을 행정로장군 매라왕으로 삼고, '?수류'는 행안국장군 벽중왕으로 삼고, '해례곤'은 행무위장군 불중후, '목간나'는 전의 무공이 있고 또한 대방을 빼앗으니 행광위장군 면중왕으로 삼으소서. 업드려 원하니 하늘의 은혜로 청을 들어 주옵소소 하였다. 또 표에 말하길, 신이 행용양장군 낙랑태수 겸 장사인 신 '모유', 행건무장군 성양태수 겸 사마인 신 '왕무', 겸 참군이고 행진무장군 조선태수 인 신 '장색', 행양무장군 '진명'은 관직에 있어 사사로움을 버리고, 오직 공무에만 힘쓰며, 위급함에 명을 받들어 어려움을 물리치고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스니다. 이제 신이 사신으로 보내어, 험한 물결을 무릅쓰고 나아가니 정성이 지극합니다. 실로 작위를 내림이 마땅하니 각각 베풀어 주십시오. 업드려 올바른 제수가 있기를 원하옵니다 하니 조서를 내려 옳다 하고 군호를 내리었다.

加羅國(가라국)
<加羅國>, <三韓>種也. <建元>元年, 國王<荷知>使來獻. 詔曰: [量廣始登, 遠<夷>洽化. <加羅王><荷知>款關海外, 奉贄東遐. 可授輔國將軍·本國王.]

'가라국'은 '삼한'의 종자이다. '건원' 원년에 나라의 왕 '하지'가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받쳤다. 조서를 내려 말하길 널리 헤아림은 높은 곳에서 시작하니 먼 이가 감화 되었다. '가라왕 하지'가 동쪽의 먼 바다 밖에서 정성으로 폐백을 받드니 가히 보국장군 본국왕을 내린다.

倭國(왜국)
<倭國>, 在<帶方>東南大海島中, <漢>末以來, 立女王. 土俗已見前史. <建元>元年, 進新除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據《南史》補. 按補一<慕韓>, 方符六國之數.$/安東大將軍·<倭王><武>號爲鎭東大將軍.

'왜국'은 '대방'의 동남쪽 큰 바다섬에 있다. '한'말에 왔는데, 여자가 왕노릇 한다. 풍속은 이기 전사에서 밝히었다. '건원' 원년 새로 사지절 도독 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육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왕 무를 제수하고 진동대장군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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