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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南史 列傳

                                       
                                 南史  列傳 (남사 열전)
 
남조(南朝), 즉 남송(南宋)·제(齊)·양(梁)·진(陳) 왕조의
 역사서. 당나라 이연수(李延壽) 편찬. 본기(本紀) 10권, 열전(列傳) 70권으로 되었으나, 지(志)와 표(表)가 결여되어 있다.
南史卷七十九
列傳第六十九
東夷: 高句麗·百濟·新羅·倭國·文身·大漢·扶桑.
高句麗(고구려)
<高句麗>, 在<遼東>之東千里, 其先所出, 事詳《北史》. 地方可二千里, 中有<遼山>, <遼水>所出. <漢>·<魏>世, 南與<朝鮮>< 貊>·東與<沃沮>·北與<夫餘>接. 其王都於<丸都山>下,/$[丸都]各本作[九都], 據《梁書》改. 按《三國志.魏志》·《梁書》無[山]字.$/ 地多大山深谷, 無原澤, 百姓依之以居, 食澗水. 雖土著, 無良田, 故其俗節食, 好修宮室. 於所居之左立大屋,/$[立大屋]各本倒作[大立屋], 據《三國志.魏志》·《梁書》乙.$/ 祭鬼神, 又祠零星·社稷. 人性凶急, 喜寇 . 其官有相加·對盧·沛者·古鄒加·主簿·優台·使者· 衣·先人,/$[ 衣]各本作[帛衣], 據《三國志.魏志》·《梁書》改.$/ 尊卑各有等級. 言語諸事, 多與<夫餘>同, 其性氣衣服有異. 本有五族, 有<消奴部>·<絶奴部>·<愼奴部>·<灌奴部>·<桂婁部>./$[愼奴部]《三國志.魏志》·《後漢書》 作[順奴部],《梁書》避<蕭衍>父<順之>諱作[愼奴部], 此循之未回改.$/ 本<消奴部>爲王, 微弱, <桂婁部>代之. 其置官, 有對盧則不置沛者, 有沛者則不置對盧. 俗喜歌 , 國中邑落, 男女每夜 聚歌戱. 其人潔淨自喜, 善藏釀,  拜申一脚, 行步皆走./$[步]字各本 脫, 據《魏志》·《梁書》補.$/ 以十月祭天大會. 其公會衣服皆錦繡金銀以自飾, 大加·主簿頭所著似 而無後, 其小加著折風, 形如弁. 其國無牢獄, 有罪者則會諸加評議, 重者便殺之, 沒入其妻子. 其俗好淫, 男女多相奔誘. 已嫁娶便稍作送終之衣. 其死葬, 有槨無棺./$[死]下各本 脫[葬]字, 據《梁書》補.$/ 好厚葬, 金銀財幣盡於送死. 積石爲封, 列植松柏. 兄死妻嫂. 其馬皆小, 便登山. 國人尙氣力, 便弓矢刀矛, 有鎧甲, 習戰鬪, <沃沮>·<東濊>皆屬焉.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에 있어, 그들이 나온 것은 '북사'에 자세히 나와있다. 땅은 가히 이천리이고 가운데에 '요산'이 있고, '요수'가 나온다. '한'과 '위'때에 남으로는 '조선', '예맥' 동으로는 '옥저' 북으로는 '부여'에 접하고 있다. 그 왕의 도읍은 '환도산'아래에 있는데, 땅은 큰산과 깊은 계곡이 많고, 깊은 연못은 없으며, 백성들이 이에 의지하여 사는데, 계곡물을 먹는다. 비록 토착하여 살지만 좋은 밭이 없어서 풍속에 식량을 절약하며, 궁실을 짓기를 좋아한다. 거하는 곳의 좌우측에 큰 집을 짓고, 귀신에 제사를 지내며, 또한 별과, 땅의 신에게도 제사를 지낸다. 사람들은 흉폭하고, 급하며, 노략질 하길 좋아한다. 관식은 '상가·대로·패자·고추가·주부·우태·사자·조의·선인이 있으며, 높고 낮음에 각각 등급이 있다. 언어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모두 '부여'와 같은 것은 것으로 성질과 기후 의복등은 다름이 있다. 본래 다섯부족으로 '소노부'·'절노부'·'신노부'·'관노부'·'계루부'이다. 본래는 '소노부'에서 왕을 하였는데, 점점 약해져, '계루부'에서 대를 잇는다. 관직을 두는데 있어, 대로가 있으면, 패자를 두지 않고, 패자가 있으면 대로를 두지 않는다. 풍속에 노래와 춤을 좋아하여, 나라의 읍락에서 남녀가 매양 밤에 무리를 이루어 노래하며 즐긴다. 사람들은 깨끗함을 좋아하고, 몰래 술을 담구어 먹으며, 다리를 뻗어 절을 하며, 걸을때는 달음질을 한다. 시월에는 크게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공적인 모임에는 모두 비단옷을 입고, 금은으로 스스로 꾸미는데, 대가와 주부의 머리에는 건과 같은 것을 머리에 쓰는데, 뒤가 없다. 소가들은 절풍을 쓰는데, 모양은 고깔과 같다. 그 나라에는 감옥이 없는데, 죄를 지은자가 있으면, 여러 가들이 모여 의논하여 중죄인은 죽이고, 그 처자도 죽인다. 풍속에 음란함을 좋아하여 남녀가 서로 꼬시어 예를 갖추지 않고, 결혼함이 많다. 이미 결혼하면, 나중에 잘살게 되면 결국에는 옷을 보내온다.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데 있어서 곽은 있으나 관이 없다. 후이 장사지냄을 좋아하여 금은과 재물과 비단을 모두 죽은자를 위해 보낸다. 돌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주위에 심어 놓는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삼고 말은 모두 작은데 산을 오르기에는 편하다. 나라사람들은 기력을 숭상하여, 활과 화설 칼과 창을 잘 다루고, 갑옷이 있으며, 전쟁을 익힌다. '옥저'와 '동예'가 모두 속해 있다.

<晉><安帝><義熙>九年, <高麗王><高璉>遣長史<高翼>奉表, 獻 白馬, <晉>以<璉>爲使持節·都督<營州>諸軍事·征東將軍·<高麗王>·<樂浪公>. <宋><武帝>踐 , 加<璉>征東大將軍,/$[征東]各本作[鎭東], 據《宋書》改. 按[鎭東大將軍]時以之封<百濟王>, 見《百濟傳》.$/ 餘官 如故. 三年, 加<璉>散騎常侍, 增督<平州>諸軍事. <少帝><景平>二年, <璉>遣長史<馬婁>等來獻方物, 遣謁者<朱邵伯>·<王邵子>等慰勞之.

'진' '안제''의희' 구년 '고려왕 고련'이 장사 '고익'을 보내어 표를 받치며, 붉은빛나는 백마를 받치자, '진'이 '련'을 사지절 도독 영주 제국사 정동장군 고려왕 낙랑공으로 삼았다. '송''무제'가 보위에 오르자, '정동대장군'을 더하고 나머지는 옛날과 같이 하였다. 삼년 '련'에게 산기상시를 더하고, 독평주제군사를 보태었다. '소제''경평'이년 '련'이 장사 '마루'등을 보내어 방물을 받치자 '주소백'과 '왕소자'를 보내어 이에 위로하였다.
<元嘉>十五年, <馮弘>爲<魏>所攻, 敗奔<高麗><北 城>, 表求迎接. <文帝>遣使<王白駒>·<趙次興>迎之, 幷令<高麗>資遣. <璉>不欲<弘>南, 乃遣將<孫漱>·<高仇>等襲殺之. <白駒>等率所領七千餘人生禽<漱>, 殺<仇>等二人. <璉>以<白駒>等專殺, 遣使執送之. 上以遠國不欲違其意, <白駒>等下獄見原.

'원가' 십오년 '풍홍'이 '위'을 공격하다가 패하여 '고려''북풍성'으로 도망하였는데, 표를 올려  맞이하여 접할 수 있기를 청하였다. '문제'가 '왕백구'와 '조차흥'을 보내어 맞도록 하고, 아울러 '고려'에 재물을 보내었다. '련'이 '홍'을 남쪽에 두고자 하지 않아, 이에 장수 '손수'와 '고구'를 보내어 엄습하여 이를 죽였다. '백구'등이 칠천여명을 거느리고 가서 '수'를 사로잡고, '구'등 두사람을 죽였다. 이에 '련'이 '백구'등이 마음데로 죽였다고, 사신을 보내어 잡아 보내달라고 하였다. 임금이 먼나라의 뜻을 어기고자 하지 않아, '백구'등을 옥에 가두었다가 풀어 주었다.
<璉>每歲遣使. 十六年, <文帝>欲侵<魏>, 詔<璉>送馬, 獻八百匹.
'련'이 매양 해마다 사신을 보내었다. 육십년 '문제'가 '위'를 침략하고 하여 '련'에게 말을 보내 달라고 하니, 팔백필을 받쳤다.

<孝武><孝建>二年, <璉>遣長史<董騰>奉表, 慰國哀再周,  獻方物. <大明>二年, 又獻<肅愼氏> 矢石 . 七年, 詔進<璉>爲車騎大將軍·開府儀同三司, 餘官 如故. <明帝><泰始>·<後廢帝><元徽>中, 貢獻不絶, 歷<齊> 授爵位, 百餘歲死. 子<雲>立, <齊><隆昌>中, 以爲使持節·散騎常侍·都督<營><平>二州·征東大將軍·<高麗王>·<樂浪公>./$[二州]下《南齊書》有[諸軍事]三字. [高麗王]三字各本 脫, 據《南齊書》補. 按下云[持節·常侍·都督·王 如故], 明此脫[高麗王]三字.$/
'효무' '건녕' 이년 '련'이 장사 '동승'을 보내어 표를 받들며, 나라의 슬픈 일을 두루 위로하며 함께 방물을 받쳤다. '대명'이년 또 '숙신씨'가 고시와 돌화살촉을 받쳤다. 칠년 '련'을 거기대장군 개부의동삼사 로 삼고 나머지 관직은 옛날과 같이 하였다. '명제''태시' '후발제''원미'중에 공물을 받치기를 끊이질 않았다. '제'에서도 작위를 내렸는데 백여세에 죽었다. 아들 '운'이 섰다. '제''융창' 중에 사지절 산기상시 도독 영평이주 정동대장군 고려왕 낙랑공을 삼았다.

<梁><武帝>卽位, 進<雲>車騎大將軍. <天監>七年, 詔爲撫東大將軍·開府儀同三司, 持節·常侍·都督·王 如故. 十一年·十五年, 累遣使貢獻. 十七年, 雲死, 子<安>立. <普通>元年, 詔<安>纂襲封爵, 持節·督<營><平>二州諸軍事·寧東將軍. 七年, <安>卒, 子<延>立, 遣使貢獻. 詔以<延>襲爵. <中大通>四年·六年, <大同>元年, 七年, 累奉表獻方物. <太淸>二年, <延>卒, 詔其子<成>襲<延>爵位.

'양''무제'즉위년에 '운'에게 차기대장군을 더하였다. '천감'칠년 무동대장군 개부의동삼사를 삼고 지절 상시 도독 왕은 전과 같았다. 십일년 십오년 연달아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받쳤다. 십칠년 '운'이 죽고 아들 '안'이 섰다. '보통' 원년 '안'에게 봉작을 내리고, 지절 독 영평이주제군사 영동장군으로 삼았다. 칠년 '안'이 죽자 아들 '연'이 서고, 사신을 보내와 공물을 받쳤다. '연'에게 작위를 내렸다. '중대통' 사년 육년 '대동'원년 칠년 더불어 표를 받들어 방물을 받쳤다. '태청' 이년 '연'이 죽자 그 아들 '성'에게 '연'을 잇는 작위를 내렸다.
百濟(백제)
<百濟>者, 其先東夷有三<韓國>: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弁韓>·<辰韓>各十二國, <馬韓>有五十四國. 大國萬餘家, 小國數千家, 總十餘萬戶, <百濟>卽其一也. 後漸强大, 兼諸小國. 其國本與<句麗>俱在<遼東>之東千餘里, <晉>世<句麗>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
'백제'의 그 먼저는 동이로 세 개의 '한국'이 있었다.  하나는 '마한'이요, 둘은 '진한'이요, 셋은 '변한'이다. '변한''진한'은 각기 십이국이요 '마한'은 오십사국이 있다. 큰 나라는 만여가 이고, 작은 나라는 수천가로 총 십여만호이다. '백제'는 곧 그 하나이다. 후에 점점 강대해지더니, 여러 소국을 겸하였다. 그나라는 본래 '구려'와 함께 '요동'의 천여리에 있었느느데, '진'때에 '구려'가 이미 '요동'을 다스리자, '백제' 역시 '요서''진평' 이군의 땅에 거하여 스스로 '백제군'을 두었다.

<晉><義熙>十二年, 以<百濟王><餘映>爲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鎭東將軍·<百濟王>. <宋><武帝>踐 , 進號鎭東大將軍. <少帝><景平>二年, <映>遣長史<張威>詣闕貢獻. <元嘉>二年, <文帝>詔兼謁者<閭丘恩子>·兼副謁者<丁敬子>等往宣旨慰勞, 其後每歲遣使奉獻方物. 七年, <百濟王><餘毗>復修貢職, 以<映>爵號授之. 二十七年, <毗>上書獻方物, 私假臺使<馮野夫><西河>太守, 表求《易林》·《式占》·腰弩, <文帝> 與之. <毗>死, 子<慶>代立. <孝武><大明>元年, 遣使求除授, 詔許之. 二年, <慶>遣上表, 言行冠軍將軍·右賢王<餘紀>十一人忠勤,  求顯進. 於是詔 加優進. <明帝><泰始>七年, 又遣使貢獻. <慶>死, 立子<牟都>. <都>死, 立子<牟大>. <齊><永明>中, 除<大>都督<百濟>諸軍事·鎭東大將軍·<百濟王>. <梁><天監>元年, 進<大>號征東將軍. 尋爲<高句麗>所破, 衰弱累年, 遷居<南韓>地. <普通>二年, 王<餘隆>始復遣使奉表, 稱累破<高麗>, 今始與通好, <百濟>更爲强國. 其年, <梁><武帝>詔<隆>爲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寧東大將軍·<百濟王>. 五年, <隆>死, 詔復以其子<明>爲持節·督<百濟>諸軍事·綏東將軍·<百濟王>.

'진 '의희' 십이년 '백제왕''여영'을 사지절 도독 백제 제군사 진동장군 백제왕으로 삼았다. '송''무제'가 즉위하자 진동대장군을 더하였다. '소제''경평'이년 '영'이 장사 '장위'를 보내어 대궐에 이르러 공물을 받쳤다. '원가' 이년 '문제'가 알자 '여구은자'와 부알자 '정경자'등을 가서 음식을 베풀고 위로하자 그후 매 해마다 사신을 보내어 방물을 받쳤다. 칠년 '백제왕 여비'에게 다시 공직을 내리어 '영'의 작호를 내렸다. 이십칠년 '비'가 상서하고 방물을 받쳤다. 사가대사 '풍야부' '서하태수'가 '역림'과 '식점', 요노를 구하자 '문제'가 함께 이를 하였다. '비'가 죽자 아들 '경'이 대를 이었다. '효무''대명'원년 사신을 보내어 제수 받기를 구하자, 고하여 이를 허락하였다. 이년, '경'이 표문을 올리기를 관군장군 우현왕 '여기'등 십일명의 충절과 근면한 행동을 말하고 모두 벼슬자리를 구하였다. 이에 모두 적당한 벼슬을 더하였다. '명제''태시'칠년 또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받쳤다. '경'이 죽고 아들 '모도'가 섰다. '도'가 죽고, 아들 '모대'가 섰다. '제''영명'중에 '대'를 도독 백제 제군사 진동대장군 백제왕에 제수하였다. '양''천감'원년 '대'를 정동장군에 임명하였다. '고구려'의 깨침을 받아 쇠약해지더니 '남한'의 땅으로 도읍을 옮기었다. '보통' 이년 왕 '여융'이 다시 사신을 보내어 표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이를기를 '고려'에 거듭 깨침을 당하여 이제부터 통하기 시작하니 '백제'는 다시 강국이 되었다. 그해 '양''무제'가 '융'에게 사지절 도독 백제 제군사 영동대장군 백제왕으로 삼았다. 오년 '융'이 죽자 그 아들 '명'에게 다시 지절 독 백제 제군사 수동장군 백제왕으로 삼았다.

號所都城曰固麻, 謂邑曰 魯, 如<中國>之言郡縣也. 其國土有二十二 魯, 皆以子弟宗族分據之. 其人形長, 衣服潔淨. 其國近<倭>, 頗有文身者. 言語服章略與<高麗>同, 呼帽曰冠,  曰複衫, 袴曰 . 其言參諸<夏>, 亦<秦>·<韓>之遺俗云.

그 도읍의 성을 '고마'라 하고, 읍을 '담노'라 하는데, 중국의 군현과 같은 말이다. 그 나라에는 이십이개의 담노가 있다. 모두 아들이나 아우의 종족에게 나누어준 것이다. 그 사람들은 키가 크고, 의복은 깨끗하다. 그 나라는 '왜'와 가까와, 문신을 한 자들도 있다. 언어와 복장등은 '고려'와 같다. 모자를 '관'이라 하고, 저고리를 복삼이라 하고, 바지를 곤이라 한다. 그 말이 중국과 뒤섞이어 있는데, 역시 '진'과 '한'의 풍속이 남은 것이다.

<中大通>六年·<大同>七年, 累遣使獻方物,  請《涅槃》等經義·《毛詩》博士幷工匠 師等,  給之. <太淸>三年, 遣使貢獻. 及至, 見城闕荒毁,  號慟涕泣. <侯景>怒, 囚執之, <景>平乃得還國.
'중대통' 육년 대동 칠년, 여러번 사신을 보내어 방물을 받치어, 아울러 '열반'등 경전과 '모시', 박사와 장인 화가등을 청하자 아울러 이를 보내주었다. '태청'삼년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받쳤다. 이에 이르러 성과 대궐이 무너짐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후경'이 크게 노하여 이들을 가두었다가, '경'이 편안해지자 이에 돌아갔다.

新羅(신라)
<新羅>, 其先事詳《北史》, 在<百濟>東南五千餘里. 其地東濱大海, 南北與<句麗>·<百濟>接. <魏>時曰<新盧>; <宋>時曰<新羅>, 或曰<斯羅>. 其國小, 不能自通使聘. <梁><普通>二年, 王姓<募>名<泰>, 始使使隨<百濟>奉獻方物./$[泰]<汲古閣>本·<金陵書局>本及《梁書》作[秦]. [使]下從《梁書》疊一[使]字.$/
'신라'는 먼저의 일은 '북사'에 자세하다. '백제'의 동남쪽 오천여리에 있다. 그 땅은 동쪽으로 큰 바다에 접하고, 남과 북으로 '구려'와 '백제'에 접해있다. '위'때에는 '사로'라 말하고, '송'때에는 '신라'라 하거나 혹은 '사라'라 하였다. 그나라는 작아서 능히 스스로 사신을 보내어 통할 수가 없었다. '양''보통'이년 왕성은 '모'이고 이름은 '태'이다. '백제'의 사신을 따라 방물을 받친 것이 처음이다.

其俗呼城曰健牟羅, 其邑在內曰啄評, 在外曰邑勒, 亦<中國>之言郡縣也. 國有六啄評·五十二邑勒. 土地肥美, 宜植五穀, 多桑麻, 作 布, 服牛乘馬, 男女有別. 其官名有子賁旱支·壹旱支·齊旱支·謁旱支·壹吉支·/$《梁書》作[壹告支].$/奇貝旱支. 其冠曰遺子禮,  曰尉解, 袴曰柯半, 靴曰洗. 其拜及行與<高麗>相類. 無文字, 刻木爲信. 語言待<百濟>而後通焉.

그 퐁속에 성을 '건모라'라 하고, 읍은 안쪽에 있는 것을 '탁평'이라 한고, 밖에 있는 것을 '읍륵'이라 하는데, 역시 중국의 말로 군현이라는 것이다. 나라에는 육탁평과 오십이 읍륵이 있다. 토지가 비옥하여 오곡을 심기에 마땅하고, 뽕나무와 마가 많아 비단과 베를 짓는다. 소와 말을 부리고, 남녀는 차별이 있다. 그 관직명에는 자분한지·일한지·제한지·알한지·일길지·기패한지 가 있다. 관을 유자례라 부르고, 저고리를 위해, 바지를 가반, 신을 세라 부른다. 절하거는 가는 것은 '고려'와 서로 유사하고, 문자가 없어 나무에 새기는 것으로 믿는다. 언어는 '백제'를 통해야 통한다.

倭國(왜국)
<倭國>, 其先所出及所在, 事詳《北史》. 其官有伊支馬, 次曰彌馬獲支, 次曰奴往 . 人種禾·稻·紵·麻, 蠶桑織績, 有薑·桂·橘·椒·蘇. 出黑雉·眞珠·靑玉. 有獸如牛名山鼠, 又有大蛇呑此獸. 蛇皮堅不可斫, 其上有孔, 乍開乍閉, 時或有光, 射中而蛇則死矣. 物産略與< 耳>·<朱崖>同. 地氣溫暖, 風俗不淫. 男女皆露?,/$[ ]《梁書》作[ ],《魏志》云[男子皆露 ].$/ 富貴者以錦繡雜采爲帽, 似<中國>胡公頭. 食飮用 豆. 其死有棺無槨, 封土作 . 人性皆嗜酒. 俗不知正歲, 多壽考, 或至八九十, 或至百歲. 其俗女多男少, 貴者至四五妻, 賤者猶至兩三妻. 婦人不 妬, 無盜竊, 少諍訟. 若犯法, 輕者沒其妻子, 重則滅其宗族.

'왜국'은 그 나온곳과 있는 곳은 '북사'에 자세하다. 그 관직에는 이지마, 다음으로 미마획지, 노왕제가 있다. 사람들은 벼와 베, 삼을 기르고, 양장하여 베를짜고, 길쌈을 한다. 생강, 계수나무, 귤, 산초나무, 소가 있다. 검은 꿩과 진주, 청옥이 나온다. 소와 같은 동물이 있는데, 이름을 산서라 한다. 또한 또한 큰 뱀이 있어 이 짐승을 삼킨다. 뱀의 가죽이 딱딱하여 가히 벨수가 없는데, 위에 구명이 있어, 잠시 열렸다 닫혔다 하는데, 이때 빛이 나온다. 활로 이 가운데를 맞추면 뱀이 곧 죽는다. 물산은 '담이'와 '주애'와 같다. 땅의 기후는 따뜻하고, 풍속에 음란함이 없다. 남녀는 모두 상투를 트는데, 부하고 귀한자는 비단으로 수를 놓아 모자를 하는데, 중국의 호공두와 같은 것이다. 음식에는 변두를 사용한다. 죽은자는 관은 있으나, 곽이 없고, 봉분은 흙으로 쌓는다. 사람들은 모두 술을 즐기며, 풍속에 해를 알지 못하나, 많이들 오래 살아, 혹 팔구십살에 이르고, 혹은 백세에 이른다. 풍속에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어, 귀한 자는 사오명의 처를 거르리고 천한자 조차도 두세명의 처가 있다. 부인은 예쁘도 시셈하지 않고, 도둑이 없으며, 다툼과 송사가 적다. 만일 범을 어기면, 가벼운 자는 그 처자를 죽이고, 무거우면, 그 집안을 죽이다.

<晉><安帝>時, 有<倭王><讚>遣使朝貢. 及<宋><武帝><永初>二年, 詔曰: [<倭><讚>遠誠宜甄, 可賜除授.] <文帝><元嘉>二年, <讚>又遣司馬<曹達>奉表獻方物. <讚>死, 弟<珍>立, 遣使貢獻, 自稱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 表求除正. 詔除安東將軍·<倭國王>. <珍>又求除正<倭洧>等十三人平西·征虜·冠軍·輔國將軍等號,/$[倭洧]《宋書》作[倭隋].$/ 詔 聽之. 二十年, <倭國王><濟>遣使奉獻, 復以爲安東將軍·<倭國王>. 二十八年, 加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 安東將軍如故; 幷除所上二十三人職. <濟>死, 世子<興>遣使貢獻. <孝武><大明>六年, 詔授<興>安東將軍·<倭國王>. <興>死, 弟<武>立, 自稱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七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 <順帝><昇明>二年, 遣使上表, 言[自昔祖 , 躬 甲胄, 跋涉山川, 不遑寧處. 東征<毛人>五十五國, 西服衆夷六十六國, 陵平海北九十五國. 王道融泰, 廓土遐畿, 累葉朝宗, 不愆于歲. 道逕<百濟>, 裝飾船舫, 而<句麗>無道, 圖欲見呑. 臣亡考濟方欲大擧, 奄喪父兄, 使垂成之功, 不獲一 . 今欲練兵申父兄之志, 竊自假開府儀同三司, 其餘咸各假授, 以勸忠節]. 詔除<武>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加羅] 據《南齊書》補.$/安東大將軍·<倭王>. <齊><建元>中, 除<武>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鎭東大將軍. <梁><武帝>卽位, 進<武>號征東大將軍.

'진''안제'때에 '왜왕''찬'이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송''무제''영초'이년에 이르러 조서를 내려 말하길, '왜''찬'은 먼 정성이 가마와 같이 뜨거워 가히 제수한다. '무제''원가'이년 '찬'이 또 사마 '조달'을 보내어 표를 받들어 방물을 받쳤다. '찬'이 죽자, 아주 '진'이 섰는데, 사신을 보내와 공물을 받쳤다. 스스로 사지절 도독 왜 백제 신라 임나 진한 모한 육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이라 칭하고, 표에 바르게 제수하길 구하였다. 이에 고하여 안동장군 왜국왕에 제수하였다. '진'이 또 '왜유'등 십삼명에게 평서 정노 관군 보국장군등을 제수하길 구하자 조서를 내려 이를 들어주었다. 이십년 '왜국왕''제'가 사신을 보내와 공물을 받치자 다시 안동장군 왜국왕으로 삼았다. 이십팔년 사지절 도독 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육국제군사를 더하고 안동장군은 옛날과 같았다. 아울러 이십삼명에게 공직을 수여 하였다. '제'가 죽자 세자 '흥'이 사신을 보내와 공물을 받쳤다/ '호무''대명'육년 조서를 내려 '흥'을 안동장군 왜국왕을 내렸다. '흥'이 죽자 아우 '무'가 섰다. 스스로 사지절 도독 왜 백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칠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을 칭하였다. '순자' '승명' 이년 사신을 보내어 표를 올리며 말하길 스스로 조상들이 오래전부터 몸소 갑옷을 입고 산을 밟고 내를 건너 허둥거며 편안히 거하질 못하고 있습니다. 동으로 '모인'등 오십오국을 정벌하고, 서쪽으로 이의 무리 육십육국을 복속시키고, 바다 북쪽으로 구십오국을 평정하였습니다. 왕도가 크게 화합하나, 그 경내가 서울과 멀어, 조종에 찾아가길 해마다 잘못이 없었습니다. '백제'에 이르는 길은 배를 꾸미는데, '구려'는 길이 없어, 그리고자 하나 볼수가 없습니다. 신위 죽은 아비가 크게 일어나고 하였으나, 갑자기 아비와 형의 상을 당하여 공을 이루는데 한번에 얻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아비와 형의 뜻을 이어 병사를 단련하니, 개부의동삼사를 빌고, 나머지도 각각 제수하여 충절을 권하옵소서. 조서를 '무'에게 사지절 도독 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육귝제군사 정동대장군 왜왕을 제수하였다. '제''건원'중에 '무'에게지절 도독 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육국제군사 진동대장군을 제수 하였다. '양''무제'즉위년에 '무'에게 정동대장군을 더하였다.

其南有<侏儒國>, 人長四尺. 又南有<黑齒國>·<裸國>, 去倭四千餘里, 船行可一年至. 又西南萬里有海人, 身黑眼白, 裸而醜, 其肉美, 行者或射而食之.
그 남쪽에 '주유국'이 있는데, 사람의 키가 사척이나 된다. 또 남쪽에 '흑치국''라국'이 있는데, 왜국에서 사천여리를 가는데, 배로는 일년이 걸린다. 또 남쪽 만여리에 해인이 있는데, 몸은 검고 눈은 희며, 발가벗고, 못생겼으나 고기는 맛이 있어, 가던 사람이 혹 활을 쏘아 이를 먹기도 한다.

文身國(문신국)
<文身國>在<倭>東北七千餘里, 人體有文如獸, 其額上有三文, 文直者貴, 文小者賤./$[文小者]《太平御覽》七八四引·《通志》作[文小曲者].$/ 土俗歡樂, 物 而賤, 行客不齎糧. 有屋宇, 無城郭. 國王所居, 飾以金銀珍麗, 繞屋爲塹, 廣一丈, 實以水銀, 雨則流于水銀之上. 市用珍寶. 犯輕罪者則鞭杖, 犯死罪則置猛獸食之, 有枉則獸避而不食, 經宿則赦之.
'문신국'은 '왜'의 동북쪽 칠천여리에 있다. 사람들의 몸에 동물의 무늬와 같은 것이 있다. 그 이마 위에 세 개의 무늬가 있는데, 무늬가 곧은 것은 귀한 것이고, 무늬가 작은 것은 천한 것이다. 풍속에 음악을 좋아하고 물건이 풍부하여, 값이 싸서, 길을 가는 사람들도 양식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집은 있는데, 성곽은 없다. 나라의 왕이 거하는 곳은 금은과 보배로써 곱게 꾸미는데, 집을 둘러싸면서 도랑을 파는데, 넓이가 일장이나 되며, 수은을 채워 넣어, 비가 오면 곧 수은위로 흘러 간다. 저자거리에서 보배를 판다. 죄가 가벼운자는 매질을 하고, 죽을 죄를 범하면, 곧 맹수의 먹이로 주는데, 하늘의 보살핌이 있으면, 동물이 피하여 먹지 않아 하루를 지나면, 곧 용서한다.
大漢國(대한국)
<大漢國>在<文身國>東五千餘里, 無兵戈, 不攻戰, 風俗 與<文身國>同而言語異.
'대한국'은 '문신국'의 동쪽 오천여리에 있다. 병사들과 전쟁이 없어, 공격하지 않는다. 풍속은 '문신국'과 같으나, 언어는 다르다.
扶桑國(부상국)
<扶桑國>者, <齊><永元>元年, 其國有沙門<慧深>來至<荊州>, 說云: [<扶桑>在<大漢國>東二萬餘里, 地在<中國>之東. 其土多扶桑木, 故以爲名. 扶桑葉似桐, 初生如 , 國人食之. 實如梨而赤, 績其皮爲布, 以爲衣, 亦以爲錦./$[錦]《梁書》作[綿].$/ 作板屋, 無城郭. 有文字, 以扶桑皮爲紙. 無兵甲, 不攻戰. 其國法有南北獄, 若有犯, 輕罪者入南獄, 重罪者入北獄. 有赦則放南獄, 不赦北獄. 在北獄者男女相配, 生男八歲爲奴, 生女九歲爲婢. 犯罪之身, 至死不出. 貴人有罪, 國人大會, 坐罪人於坑, 對之宴飮分訣若死別焉. 以灰繞之, 其一重則一身屛退, 二重則及子孫, 三重者則及七世. 名國王爲乙祁. 貴人第一者爲對盧,/$[對盧]《梁書》作[大對盧].$/ 第二者爲小對盧, 第三者爲納 沙. 國王行有鼓角導從. 其衣色隨年改易, 甲乙年靑, 丙丁年赤, 戊己年黃, 庚辛年白, 壬癸年黑. 有牛角甚長, 以角載物, 至勝二十斛. 有馬車·牛車·鹿車. 國人養鹿如中國畜牛, 以乳爲酪. 有赤梨, 經年不壞./$[赤梨]《梁書》作[桑梨].$/ 多蒲桃. 其地無鐵有銅, 不貴金銀. 市無租 . 其昏姻法, 則壻往女家門外作屋, 晨夕灑掃, 經年而女不悅卽驅之, 相悅乃成昏. 昏禮大抵與<中國>同. 親喪七日不食, 祖父母喪五日不食, 兄弟伯叔姑 妹三日不食. 設座爲神像, 朝夕拜奠, 不制衰 . 嗣王立, 三年不親國事. 其俗舊無佛法. <宋><大明>二年, < 賓國>有比丘五人游行其國, 流通佛法經像, 敎令出家, 風俗遂改.]

'부상국'은 '제''영원'원년에 그나라에 승려'해심'이 있어 '형주'에 이른렀다. 말하길 '부상은 '대한국'의 동쪽 이만여리에 있으며, 육지로, '중국'의 동쪽에 있다. 땅에 '부상나무'가 많아 고로 이름을 삼았다. 부상의 잎은 오동나무가 같고, 처음에는 죽순같아, 나라 사람들이 이를 먹는다. 열매는 오얏과 같고, 붉다. 그 껍질에서 실을 뽑아 베를 만들어 옷을 짓는데, 또한 비단이다. 판잣집을 짓고, 성곽은 없다. 문자가 있는데, 부상나무 껍질로 종이를 만든다. 병사와 무기가 없어,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 그나라의 법에 남북에 감옥이 있는데, 만약 죄를 범하여, 가벼운죄는 남쪽옥에 넣고, 무거운 죄는 북쪽 옥에 넣는다. 사면할때는 곧 남쪽 옥에서 놓아주는데, 북쪽옥에는 방면하지 않는다. 북쪽옥에 있는자는 남녀를 짝지워 주는데, 남자아이를 낳으면 팔세에 노예로 삼고, 여자아이를 낳으면, 구세에 계집종으로 삼는다. 죄를 범한 몸은 죽을때까지 나올 수 없다. 귀한자가 죄를 지으면, 나라사람들이 큰 모임을 열어서 죄인을 앉혀서 구덩이에 묻는데, 연회를 열어 헤어진다고, 대답하고 만일 죽으면 이에 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재로 만들어 여기에 두른다. 그 첫 번째 중한 것은 몸 하나로 마치고, 두 번째는 자손에 미치고, 세 번째는 칠대에 이른다. 나라의 왕을 '을기'라 부르며, 귀인중 제일자를 대로, 이자를 소대로, 삼자를 납돌사라 한다. 나라의 왕이 갈 때 불치고, 피리불면서 따른다. 옷의 색깔은 해마다 바꾸는데, 갑을년에는 청색, 병정년에는 적색, 무기년에는 황색, 경신년에는 백색, 임계년에는 흑색이다. 소뿔이 많이 길어서 뿔에다 물건을 매다는데 이십되나 실을 수 있다. 마차와 우차, 녹차가 있다. 나라 사람들은 사슴을 기르는데, 중국의 가축과 같아, 젖을 짜서 식초를 만든다. 역시 배나무가 있는데, 해마다 무너지지 않는다. 포도가 많다. 그 땅에는 철이 없고, 동이 있으며, 금은은 귀하지 않다. 시장에는 대금이 없다. 그 혼인하는 법에 사위되는 사람이 여자집에 가서 문밖에 집을 짓고, 새벽과 저녁으로 청소하는데, 그 해에 여자가 좋아하지 않으면 돌아 오고 서로 좋아하면 결혼하게 된다. 혼인하는 예는 대계 중국과 같다. 친부모가 상을 당하면 칠일간 먹지 않고, 조부모가 상을 당하면 오일간 먹지 않고, 형제와 삼촌 사촌과 누이가 상을 당하면 삼일간 먹지 않고, 신상을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절하고 제사하는데, 애질(머리에 쓰는것)은 하지 않는다. 왕이 계승하면 삼년가 친히 나라일을 돌보지 않는다. 그 풍속에 옛부터 불법이 없다. '송''대명'이년 '계빈국'에서 다섯명이 나라에 와서 불법과 불상을 가져와서 종교로 출가하게 되는 풍속을 고치게 되었다.
<慧深>又云: [<扶桑>東千餘里有<女國>, 容貌端正, 色甚潔白, 身體有毛, 髮長委地. 至二三月競入水則任娠, 六七月産子. 女人胸前無乳, 項後生毛,/$[項後]各本作[頂後], 據《梁書》改.$/ 根白, 毛中有汁以乳子. 百日能行, 三四年則成人矣. 見人驚避, 偏畏丈夫. 食鹹草如禽獸. 鹹草葉似邪蒿, 而氣香味鹹. <梁><天監>六年, 有<晉安>人度海, 爲風所飄至一島, 登岸, 有人居止, 女則如<中國>, 而言語不可曉. 男則人身而狗頭, 其聲如吠. 其食有小豆, 其衣如布. 築土爲牆, 其形圓, 其戶如竇云.]

'혜심'이 또 말하길' '부상'의 동쪽 천여리에 '여국'이 있는데, 얼굴이 곧고, 색깔은 깨끗한 백색이고, 몸에 털이 있으며, 머리칼이 길어 땅까지 이른다. 이삼월달에 이르러, 물이 들어오면 곧 아이를 베고, 육칠월에 아이를 낳는다. 여자들은 앞가슴에 젖이 없고, 목뒤에 털이 있어 뿌리는 하얗다. 털 가운데에 즙이 있어 아이에게 젓을 먹인다. 백일이면 능히 걸을 수 있고, 삼사년이면 성인이 된다. 사람을 보면 놀라서 피하는데, 특히 장부를 두려워한다. 동물처럼 쓴 풀을 먹는다. 쓴 풀의 잎은 사호와 같은데, 향과 맛이 쓰다. '양''천감' 육년 '진안'사람이 바다를 건너왔는데, 회오리 바람이 불어 한 섬에 도착해서, 해안에 올라와 사람들이 거하였는데, 여자는 '중국'과 같았고, 언어는 가히 깨달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사람의 몸에 개의 머리를 하고 있고, 그 소리는 짓는 것과 같다. 음식에 작은 콩이 있고, 옷은 베와 같다. 흙은 쌓아 경계를 만들고, 그 형태는 둥근데, 문은 구멍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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