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명언]
誓海漁龍動 盟山草木知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 '이충무공 전서' 중 15권에 실린 "진중음"으로 임금의 피난 소식을 접한 후 나라의 앞날을 근심하면서 충신의 굳센 의지와 장부의 기개 및 충혼을 표현한 말씀으로 원문은 "임금은 서쪽으로 멀리 가시고, 왕자님은 북쪽에서 위태한 오늘, 외로운 신하가 나라를 걱정하는 날이여! 이제 장사들은 공을 세울 때로다.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 이 원수 왜적을 모조리 무찌른다면, 비록 내 한 몸 죽을지라도 사양치 않으리라!' 이다.
勿令妄動 靜重如山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거이 행동하라." 1592년 5월 7일. 임진왜란 중 처음으로 출전한 옥포해전을 앞두고, 경상좌우도 수군과 육군의 패배 소식으로 긴장하고 당황한 군사들에게 공격에 대한 세부사항을 지시 후, 공포심과 전쟁경험 부족을 극복하고 전장에서의 여유와 냉철함을 가질 수 있도록 한 말씀이다.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 "이제 제게는 아직도 전선 십이 척이 있으니" 칠천량해전 이후 공께서 다시 통제사 재임명 교서를 받고 수군을 재정비한 결과 전선 12척에 군사 120명이라 "수군을 폐하고 육전에 참가하라"는 임금의 밀지에 수군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조정에 강력히 건의한 내용이다. 원문은 "이제 제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있으니, 죽을힘을 다해 항거해 싸우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비록 전선은 적지만 제가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다. 이는 수군의 존속과 가치와 그 효용론을 강력히 주장한 공의 뛰어난 전략적 식견의 발언이라 하겠다.
必生卽死 死必卽生 "싸움에 있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왜선 133척을 전선 12척으로 싸워야 하는 명량해전을 앞두고, 9월 15일 전투력의 절대 열세를 정신력으로 극복하기 위해, 장수들의 전투의지 분발과 '결사구국'의 각오를 나타낸 말씀이다. 원문은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오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장수들은 살려는 생각을 하지 마라. 명령을 조금이라도 어긴다면 군법으로 처단할 것이다." 이다.
차수약제 사즉무감(此獸若除 死卽無憾) "이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임진왜란 중 최후의 결전인 노량해전을 앞둔 1598년 11월 18일 밤 12시가 지날 무렵, 함상에서 손을 씻고 무릎을 꿇어 향불을 피우면서, 겨레의 생명과 나라의 보존을 위한 최후의 염원을 담아, 하늘에 빌었던 내용으로 충무공의 "결사보국" 정신의 말씀이다.
전방급 신물언아사(前方急 愼勿言我死)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1598년 11월 19일 아침, 마지막 노량해전의 대 격전 중 갑자기 날아든 총환이 뱃머리에서 독전하던 공의 왼편 겨드랑이를 맞혀 공께서 전사하는 순간 마지막까지 왜군의 격퇴를 염려한 '애국의 유언'이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구 일본 제국 해군 관계자들의 평들]
도고 제독이 전승 축하연에서 '넬슨에다 비할수는 있어도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는 것이 황송하다'고 했다는 증언이나, '미 해군사관학교 졸업생들이 일본을 방문했을때 도고 제독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을때, 도고가 이순신 장군을 가장 존경했다고 대답했다'는 증언은 구체적인 인용 근거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저도 이 일화에 대한 정확한 문헌적 근거가 궁금합니다.
다만 간접적인 정황 증거들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구 일본 해군 제독 사토 데쯔타로가 넬슨 따위는 이순신 장군과 비교할 수 없다며 이순신 장군을 찬양한 글은 1908년 제국국방사론(帝國國防史論)과 조선지방행정 26년 2월호에 남아있습니다. 제국국방사론의 이순신 장군 찬양 부분은 여러 차례 인용이 된 바 있고, 조선지방행정 1926년 2월호는 수 년전에 고 이종학 선생에 의해 원전과 완역된 문장이 공개된 바 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일본 해군이 러시아 해군과 싸우기 직전에 진해를 출항하면서 이순신 장군의 영혼에게 빌었다고 시바 료타로가 '坂の上の雲'에서 묘사한 부분은 제41호 어뢰정 정장 水野廣德의 실제 사례를 소설에다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당시 해군 소위로 해전에 참가한 川田功도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증언했다고 합니다. 이 부분의 구체적인 책 제목과 인용 근거는 충무공수련원 연구실장 최두환씨의 '충무공이순진전집'에서 확인 가능할 겁니다.
구 제국 일본 사관학교 졸업생들이 이순신 장군 사당인 충렬사에 참배했다는 내용은 충렬사 관리인(익명)의 증언을 근거로 해서, 유명한 이순신 연구가인 최석남씨의 저서(한국의 명장 이순신 하권)에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구 제국 일본 해군 함정이 진해에 입항할 때마다 통영을 향해 이순신 장군에게 경의를 표했다는 내용은 일본 고위급 문관의 양자였던 한국인 K씨의 증언을 근거로 해서, 역시 최석남씨가 그의 저서에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도고 제독이 이순신 장군을 매우 존경했다는 내용은 유명한 수필가인 김소운씨가 일본 해군 중좌의 증언을 듣고 이를 다시 최석남씨에게 전한 내용이, 역시 최석남씨의 저서에 남아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구 일본 제국 해군 관계자들의 평들]
도고 제독이 전승 축하연에서 '넬슨에다 비할수는 있어도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는 것이 황송하다'고 했다는 증언이나, '미 해군사관학교 졸업생들이 일본을 방문했을때 도고 제독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을때, 도고가 이순신 장군을 가장 존경했다고 대답했다'는 증언은 구체적인 인용 근거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저도 이 일화에 대한 정확한 문헌적 근거가 궁금합니다.
다만 간접적인 정황 증거들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구 일본 해군 제독 사토 데쯔타로가 넬슨 따위는 이순신 장군과 비교할 수 없다며 이순신 장군을 찬양한 글은 1908년 제국국방사론(帝國國防史論)과 조선지방행정 26년 2월호에 남아있습니다. 제국국방사론의 이순신 장군 찬양 부분은 여러 차례 인용이 된 바 있고, 조선지방행정 1926년 2월호는 수 년전에 고 이종학 선생에 의해 원전과 완역된 문장이 공개된 바 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일본 해군이 러시아 해군과 싸우기 직전에 진해를 출항하면서 이순신 장군의 영혼에게 빌었다고 시바 료타로가 '坂の上の雲'에서 묘사한 부분은 제41호 어뢰정 정장 水野廣德의 실제 사례를 소설에다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당시 해군 소위로 해전에 참가한 川田功도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증언했다고 합니다. 이 부분의 구체적인 책 제목과 인용 근거는 충무공수련원 연구실장 최두환씨의 '충무공이순진전집'에서 확인 가능할 겁니다.
구 제국 일본 사관학교 졸업생들이 이순신 장군 사당인 충렬사에 참배했다는 내용은 충렬사 관리인(익명)의 증언을 근거로 해서, 유명한 이순신 연구가인 최석남씨의 저서(한국의 명장 이순신 하권)에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구 제국 일본 해군 함정이 진해에 입항할 때마다 통영을 향해 이순신 장군에게 경의를 표했다는 내용은 일본 고위급 문관의 양자였던 한국인 K씨의 증언을 근거로 해서, 역시 최석남씨가 그의 저서에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도고 제독이 이순신 장군을 매우 존경했다는 내용은 유명한 수필가인 김소운씨가 일본 해군 중좌의 증언을 듣고 이를 다시 최석남씨에게 전한 내용이, 역시 최석남씨의 저서에 남아있습니다.
[이순신 전사 후, 명나라 제독 진린이 선조에게 바친 글 ]
이순신 장군이 전투에서 거둔 적의 수급(머리)을 자신에게 바치지 않는다면서 행패를 부렸던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이 이런 글을 선조에게 올렸다고 합니다. 내부의 적을 감동시켜 자신의 편으로 동화 시킬 수 있을 정도로 장군은 지략 뿐이 아니라, 인품도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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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애통하여 붓을 들기가 어렵고 떨어지는 눈물로 먹을 갈아 올리나이다.
전하의 충성된 신하 순신이 지난 전투에서 전사하였나이다. 소장도 순신과 함께 전장에 나섰던 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들이 노량의 바다를 덮어 순천에 고립된 고니시를 구하려 흉폭한 칼을 앞세우고 도전하여 왔나이다.
이에 순신이 자신이 대장됨을 잊고 용감히 나가싸우매 도적들의 사나운 칼을 두려워함이 없었나이다. 마침내 수백 척의 적함들을 격침하고 수만의 적들이 고기밥이 되었으나 저 간악한 고니시는 싸움이 치열한 틈을 타 제나라로 도망쳤으니 이처럼 비분한 일이 없다할 것이나. 전하의 충성된 신하 순신이 동틀 무렵하여 어지러운 전투 중에 패잔병이 허투루 쏜 총알에 맞으니 이런 비통한 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비보를 듣고 급히 순신을 소장의 배에 옮겨 독의를 다그치며 순신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어찌 애통하다 아니할 것이겠습니까? 마침내 순신이 그 숨을 거두니 이를 지켜본 소장과 휘하의 모든 장수들이 애통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나 순신이 이르기를 ‘싸움이 끝나기까지는 나의 죽음을 아군에 이르지말라’ 하였다는 소자의 말을 듣고 짐짓 이를 감추어 큰 승리를 거두기까지 적이 기뻐하지 못하게 하였나이다.
소장은 이미 지난 순천전투에서 순신이 제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구원하지 않았더라면 머나먼 낯선 바다에서 도적들의 횟감이 됐을 것입니다. 소장이 약관의 나이에 임관하여 한평생을 바다에서 살았으나 천국에서도 소방에서도 순신과 같은 충신을 보지 못하였고 순신과 같은 맹장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마침내 순신이 아니었다면 소장의 목숨도 온전치 못하였을 것 입니다. 그러나, 순신은 소장의 목숨을 건져주었으나 소장은 순신이 도적들의 흉탄에 쓰러지는 것을 막지 못하였으니 이 비통하고 참담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일찌기 소장이 순신의 용맹하고 충성됨을 장계하매 상국의 천자께서도 이를 아름답게 여기시고 탐내시어 마침내 상국의 수사 제독을 제수하셨으나 이제 순신을 잃으니 이를 어찌 전하의 애통함으로 그친다 하겠습니까?
일찌기 상국의 천자께오서 왜국의 도적들이 전하의 나라를 침노하여 마침내 상국을 향하여 그 창 끝을 돌렸기로 진노하시기를 지옥의 불길처럼 하시고 천군을 내려 도적들을 소탕하려 하셨으나 이에 도적들이 간교한 꾀를 부려 저희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물러나는 듯 하다가 다시 천자를 능멸하고 재차 도전해오니, 이에 천자께서 소장을 불러 이르시기를 내가 마침내 저 도적들을 내 위엄 앞에 쓸어버릴 것이니 너는 내 명을 받으라 하시기로 소장이 하늘의 뜻을 받잡고 남도에 이르러 순신과 대면하였나이다.
그러나, 그의 지략은 하늘이 내렸으며 그의 용맹은 자룡이 두려워할만 하였나이다.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소장도 스스로 옷깃을 여미고 순신을 스승으로 여겼나이다. 선천에 이미 이와 같은 장수가 없었으니 감히 비교하자면 남송의 악비가 소방에 환생한듯 하였나이다. 소장뿐만 아니라 제가 휘하에 거느린 모든 부장과 장교들, 그리고 가장 어리석은 병졸에 이르기까지 순신을 존경하고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으니 이 어찌 전하의 홍복이 아니라 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미 순신이 옛사람이 되었으니 애통한 마음 감출 수가 없습니다. 순신을 잃고 전하의 어안을 어찌 볼 것이며 또한 상국으로 돌아가 천자의 용안을 어찌 보겠나이까? "그대는 순신과 함께 전장에 나가더니 어찌 그대는 살아 돌아왔으나 순신은 어디있는가?" 하시면 소장은 무엇이라 천자 앞에 말할 것입니까? 부끄러워 낯을 들 수 없고 무릎이 떨려 일어설 수가 없나이다.
이제 소장이 순신을 잃으매 이 참담함이 마치 현덕이 공명을 잃음 같고 어룡이 여의주를 잃음과 같사옵니다.
이에 삼가 전하께 아뢰오니 전하의 충성된 신하 순신이 치열한 전투끝에 300 척이 넘는 적함을 깨버리고 3만이 넘는 도적들을 어룡의 밥으로 주었으나 마침내 흉적의 탄환에 목숨을 잃으니, 하늘이 분하여 울고 산천초목이 애통하여 떨었나이다.
마침내 소장이 순신의 몸을 염하여 천자께서 내리신 비단으로 덮어 통제영에 이르니 백성 중에 놀라 까무러치지 않는 자가 없고 엎어져 울부짖지않는 자가 없었으니 이처럼 놀랍고 슬픈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들의 모습이 마치 전란 중에 부모를 도적의 칼에 잃고 길바닥에 나앉아 우는 어린 아이들과 같았으니 소장의 장졸 중에도 눈물을 감출 수 있는 자가 없었나이다. 실로 애통하고 애통하며 애통하다 아니할 수 없었나이다.
소장이 감히 전하께 주청하오니 7 년에 걸친 참담 한 전란 중에 섬나라의 도적들이 그이름만 듣고도 떤 것은 오직 전하의 충성된 신하, 순신이었으니 이에 그의 공을 높이시어 그를 뒤늦게나마 승상으로 삼으시고 순신의 죽음으로 애통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국상을 허락하시기를 비나이다. 전하께옵서 이같이 하시면 이나라의 백성으로 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답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옵니다.
다시금 북받치는 애통함에 붓을 들 수 없음을 용서하소서. 일찍이 순신이 소장의 목숨을 구하였으나 소장은 죽음이 순신을 데려가는 것을 막지못하였나이다. 전하, 소장을 용서하시옵소서.
애통하여 붓을 들기가 어렵고 떨어지는 눈물로 먹을 갈아 올리나이다.
전하의 충성된 신하 순신이 지난 전투에서 전사하였나이다. 소장도 순신과 함께 전장에 나섰던 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들이 노량의 바다를 덮어 순천에 고립된 고니시를 구하려 흉폭한 칼을 앞세우고 도전하여 왔나이다.
이에 순신이 자신이 대장됨을 잊고 용감히 나가싸우매 도적들의 사나운 칼을 두려워함이 없었나이다. 마침내 수백 척의 적함들을 격침하고 수만의 적들이 고기밥이 되었으나 저 간악한 고니시는 싸움이 치열한 틈을 타 제나라로 도망쳤으니 이처럼 비분한 일이 없다할 것이나. 전하의 충성된 신하 순신이 동틀 무렵하여 어지러운 전투 중에 패잔병이 허투루 쏜 총알에 맞으니 이런 비통한 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비보를 듣고 급히 순신을 소장의 배에 옮겨 독의를 다그치며 순신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어찌 애통하다 아니할 것이겠습니까? 마침내 순신이 그 숨을 거두니 이를 지켜본 소장과 휘하의 모든 장수들이 애통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나 순신이 이르기를 ‘싸움이 끝나기까지는 나의 죽음을 아군에 이르지말라’ 하였다는 소자의 말을 듣고 짐짓 이를 감추어 큰 승리를 거두기까지 적이 기뻐하지 못하게 하였나이다.
소장은 이미 지난 순천전투에서 순신이 제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구원하지 않았더라면 머나먼 낯선 바다에서 도적들의 횟감이 됐을 것입니다. 소장이 약관의 나이에 임관하여 한평생을 바다에서 살았으나 천국에서도 소방에서도 순신과 같은 충신을 보지 못하였고 순신과 같은 맹장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마침내 순신이 아니었다면 소장의 목숨도 온전치 못하였을 것 입니다. 그러나, 순신은 소장의 목숨을 건져주었으나 소장은 순신이 도적들의 흉탄에 쓰러지는 것을 막지 못하였으니 이 비통하고 참담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일찌기 소장이 순신의 용맹하고 충성됨을 장계하매 상국의 천자께서도 이를 아름답게 여기시고 탐내시어 마침내 상국의 수사 제독을 제수하셨으나 이제 순신을 잃으니 이를 어찌 전하의 애통함으로 그친다 하겠습니까?
일찌기 상국의 천자께오서 왜국의 도적들이 전하의 나라를 침노하여 마침내 상국을 향하여 그 창 끝을 돌렸기로 진노하시기를 지옥의 불길처럼 하시고 천군을 내려 도적들을 소탕하려 하셨으나 이에 도적들이 간교한 꾀를 부려 저희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물러나는 듯 하다가 다시 천자를 능멸하고 재차 도전해오니, 이에 천자께서 소장을 불러 이르시기를 내가 마침내 저 도적들을 내 위엄 앞에 쓸어버릴 것이니 너는 내 명을 받으라 하시기로 소장이 하늘의 뜻을 받잡고 남도에 이르러 순신과 대면하였나이다.
그러나, 그의 지략은 하늘이 내렸으며 그의 용맹은 자룡이 두려워할만 하였나이다.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소장도 스스로 옷깃을 여미고 순신을 스승으로 여겼나이다. 선천에 이미 이와 같은 장수가 없었으니 감히 비교하자면 남송의 악비가 소방에 환생한듯 하였나이다. 소장뿐만 아니라 제가 휘하에 거느린 모든 부장과 장교들, 그리고 가장 어리석은 병졸에 이르기까지 순신을 존경하고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으니 이 어찌 전하의 홍복이 아니라 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미 순신이 옛사람이 되었으니 애통한 마음 감출 수가 없습니다. 순신을 잃고 전하의 어안을 어찌 볼 것이며 또한 상국으로 돌아가 천자의 용안을 어찌 보겠나이까? "그대는 순신과 함께 전장에 나가더니 어찌 그대는 살아 돌아왔으나 순신은 어디있는가?" 하시면 소장은 무엇이라 천자 앞에 말할 것입니까? 부끄러워 낯을 들 수 없고 무릎이 떨려 일어설 수가 없나이다.
이제 소장이 순신을 잃으매 이 참담함이 마치 현덕이 공명을 잃음 같고 어룡이 여의주를 잃음과 같사옵니다.
이에 삼가 전하께 아뢰오니 전하의 충성된 신하 순신이 치열한 전투끝에 300 척이 넘는 적함을 깨버리고 3만이 넘는 도적들을 어룡의 밥으로 주었으나 마침내 흉적의 탄환에 목숨을 잃으니, 하늘이 분하여 울고 산천초목이 애통하여 떨었나이다.
마침내 소장이 순신의 몸을 염하여 천자께서 내리신 비단으로 덮어 통제영에 이르니 백성 중에 놀라 까무러치지 않는 자가 없고 엎어져 울부짖지않는 자가 없었으니 이처럼 놀랍고 슬픈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들의 모습이 마치 전란 중에 부모를 도적의 칼에 잃고 길바닥에 나앉아 우는 어린 아이들과 같았으니 소장의 장졸 중에도 눈물을 감출 수 있는 자가 없었나이다. 실로 애통하고 애통하며 애통하다 아니할 수 없었나이다.
소장이 감히 전하께 주청하오니 7 년에 걸친 참담 한 전란 중에 섬나라의 도적들이 그이름만 듣고도 떤 것은 오직 전하의 충성된 신하, 순신이었으니 이에 그의 공을 높이시어 그를 뒤늦게나마 승상으로 삼으시고 순신의 죽음으로 애통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국상을 허락하시기를 비나이다. 전하께옵서 이같이 하시면 이나라의 백성으로 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답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옵니다.
다시금 북받치는 애통함에 붓을 들 수 없음을 용서하소서. 일찍이 순신이 소장의 목숨을 구하였으나 소장은 죽음이 순신을 데려가는 것을 막지못하였나이다. 전하, 소장을 용서하시옵소서.
출처:매니안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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