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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 : 중국 간쑤성[甘肅省]에 있는 작은 도시. 내륙아시아의 건조지대에 속하며, 고비사막 안의 오아시스에 있다. 전한(前漢)의 무제(武帝) 시대에, 흉노에 대항하여 한나라의 군대가 황허강[黃河] 서쪽으로 진출했을 때 주둔지가 되어 둔황군[敦煌郡]이 설치된 데서 시작된다. 한나라의 서역 진출의 기지로서 위먼관[玉門關]·양관[陽關]이 설치되고 변방의 요충이 되었다. 이곳은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서방세계로 이르는 실크로드의 요지이며, 통상의 거점이 되었는데, 이란계 등 여러 종족이 잡거했다. 서진(西晉)시대에는 유명한 장군으로서 글을 잘 쓰기로 이름 높았던 삭정(索靖)을 낳았고, 문화수준도 내륙과 같은 수준으로 높아졌다. 한때 서량(西凉)의 국도(國都)이기도 했으며, 유명한 석굴사원[千佛洞 莫高窟]이 개착(開鑿)되어 불교문화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다. 8세기 성당(盛唐) 때에는 13향(鄕) 약 6000호, 3만여의 인구를 거느렸으며, 막고굴에 북·남의 양대불이 조현(造顯)되었고, 현란한 정토도(淨土圖) 등의 벽화로 장식되었다. 그 뒤 당나라의 세력이 후퇴하자 토번(吐蕃;티베트)에 수십년간 점령되었다. 848년 토호(土豪) 장의조(張議潮)가 토번의 내분을 틈타 이를 쫓아내고, 당나라에 귀순해서 귀의군절도사(歸義軍節度使)에 임명되었다. 11세기 중엽 탕구트(Tangut;黨項)의 지배하로 들어갔고, 이어서 몽골·투르판(Turfan;吐魯蕃)의 위구르 세력하에 있은 뒤, 18세기에 이르러 청조(淸朝)의 관할지역이 되었고, 재차 많은 한인(漢人)이 이주해와 지금은 10만여의 인구를 가지며, 천불동으로 유명한 관광도시가 되었다. 20세기 초 석굴의 한 방에 봉장(封藏)되어 있었던 수만 점의 고사본단권(古寫本斷卷)·당번(幢幡) 등이 발견되었다.
월아천 : 명사산 안에 있는 작은 오아시스로
모래산에 둘러싸여 잠시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는 신비로운 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