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수의 왕인 사자는 권력을 상징한다. 문을 이루는 상하좌우 네 개의 돌들은 피라미드를 쌓은 돌들보다 더 커서 각기 무게가 20t이 넘는다. [미케네 = 안성식 기자] ![]() ![]() ![]() ![]() ![]() 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를 만들다. 호메로스가 트로이 전쟁을 노래하던 시절, 소아시아 키메 출신의 한 뱃사람이 바다에 싫증을 내고 그리스 본토 보이오티아 지방의 도시국가 아스크라로 이주했다. 목축과 농사로 삶을 꾸려 나갔지만 이곳에서의 삶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아들 헤시오도스는 어느 날 헬리온 산에서 양들을 돌보다 음악과 시의 여신 무사이들에게서 노래하는 재주를 전수받았다. 그리고 영감에 싸여 우주 창조부터 신들의 탄생과 권력 투쟁, 인간의 탄생에 대해 노래했다. 그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태초에 혼돈(Chaos)만이 있었다. 이어서 대지 어머니 가이아(Gaia)와 영원한 지하 감옥 타르타로스(Tartaros)와 만물을 서로 결합하게 하는 에로스(Eros)가 생겨났다. 혼돈에서부터 어둠과 밤이 태어났고 밤과 어둠이 서로 어울려 대기와 낮.파멸.운명.죽음.잠.꿈 등이 태어났다. 밤은 또 책망과 운명.복수.허위.우정.노화.불화를 낳았다. 그리고 불화로부터 고통.살인.고민.불행이 태어났다. 한편 가이아는 스스로 우라노스(Ouranos. 하늘)와 바다.산.시간을 만든 뒤 우라노스와 어울려 티탄족을 낳았다. 티탄족의 막내 크로노스(Kronos)는 어머니 가이아의 사주를 받아 아버지 우라노스를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 역시 아들 제우스와의 전쟁에서 패해 타르타로스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제우스는 가이아가 보낸 티탄족 및 타이폰과의 대결에서 모두 이겨 우주의 권좌를 확고히 했다…". 이렇게 천지 창조에서부터 올림포스의 신들이 패권을 잡기까지 이야기를 적은 헤시오도스의 서사시 '신통기(神統記 Theogonia)'는 지루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삼라만상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인간의 본성과 복잡한 사회의 특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을 찾는 진지함이 배어 있다. 그는 농부의 눈으로 우주의 생성과 생명의 기원, 특히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노래했다.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해 안다는 것은 태초에 어떤 신들이 어떻게 태어나서 어떤 일들을 했는지를 아는 일이다. 이런 작업은 신들의 계보(系譜)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는 신들뿐 아니라 대기.광명.밤.낮 등과 같은 천체 현상과 바다.산.강과 같은 자연물은 물론 파멸.운명.죽음.잠.질투.불운.사랑.증오.허영과 같은 추상 개념까지도 모두 하나의 계보로 묶었다. 게다가 그는 인간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왜 지금과 같은 특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이런 신들과의 관계 아래서 설명했다. 이로써 인류에게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낯선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체계로 변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의 수는 자그마치 6000명. 이들은 정교한 족보에 의해 여러 친족 집단으로 나뉘어 있고, 또 이 친족 집단들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거대한 사회를 형성한다. 신들과 영웅들로 이루어진 이러한 사회조직은 다른 민족신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단순한 민담이나 설화 형태였던 이야기들이 거대한 강물처럼 도도하게 흐르는 서사 체계를 갖는 그리스 신화로 발전하게 된 밑바탕에는 이처럼 헤시오도스가 만든 신들의 계보가 있다. 얼핏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신들의 족보가 이처럼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헤시오도스의 영향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신화의 인물들이 각기 고유한 이름과 족보를 가지고 등장함에 따라 그전까지는 독립적이고 일회적이었던 개개의 설화들이 하나의 유기적 관계를 맺는 통일체로 발전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도 이런 체계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이아손을 중심으로 한 50명의 그리스 영웅들이 황금의 양털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그린 '아르고스 원정대' 이야기나 멜리아그로스와 아틀란테를 비롯한 또 다른 50명의 영웅이 벌이는 '칼뤼돈의 멧돼지 사냥'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신화 가운데 오이디푸스 왕과 그의 딸 안티고네로 대표되는 테바이의 라브다코스 가계(家系)의 비극과, 아가멤논과 그의 처 클뤼다임네스트라, 아들 오레스테스로 이어지는 미케네의 아트레우스 가계의 비극은 후대의 3대 비극 작가인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손에 의해 널리 알려진다. 호메로스가 인간 영웅을 그리면서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치와 인생관을 보여 주었다면 헤시오도스는 인간이 신이나 기타 정령을 가졌다고 믿어지는 미지의 것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 나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런 점에서 호메로스가 예술가였다면 헤시오도스는 영감에 가득 찬 샤먼이었다.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정신을 가진 귀족 취향의 호메로스와 감성적이고 종교적 경향을 가진 서민 취향의 헤시오도스, 이 두 사람의 작품 세계는 서로를 보완하며 이미 서양 문학 요람기에 서양 문학이 가야 할 길을 굵은 선으로 그어 놓았다. *** 그리스 신화는 "태초에 혼돈만이 있었다." ▶ 헤시오도스 그리스 신화란 호메로스가 활동하던 기원전 9세기부터 서양 고대 세계가 끝나는 기원후 4세기까지 13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에 퍼져 있던 설화와 전설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리스 신화는 우주 생성을 설명하는 '천지 창조 설화'와 신들의 탄생과 투쟁을 그리는 '신들의 탄생 설화', 영웅들의 모험과 전쟁을 노래한 '영웅 설화', 하늘의 별자리나 기괴한 모습의 바위, 나무, 지형의 기원을 설명하는 '변신 설화'로 나뉜다. 그리스 신화의 가장 큰 특성은 신들에서부터 영웅들로 이어지는 정밀하고도 방대한 족보에 있다. 신화의 인물들은 이런 통일된 족보 안에서 마치 현실의 인물들처럼 고유한 이름과 그가 구체적으로 활동하던 시대와 장소를 갖게 되었다. 그 결과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자신들의 역사로 생각하게 되었다. 일단 신화가 역사로 인식되자 신화에서 허황되고 괴기스러운 요소들이 제거되고 신들도 인간적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리스 문명의 인간 중심 사상은 이미 신화에서 시작된 것이다.
2004년 8월 12일字 중앙일보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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