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족(中華民族)은 허구(虛構)의 族名이다.
우리 'O교'는 다 압니다..
우리의 피는 의심스럽지만, 순수 종족, 조선민족의 역사를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중화민족은 (모두) 허구의 족명이다
중국인은 모두 한인이 아니다.
대만인은 (那裏) 한인?
古代부터 '中國'이란 말은 西周 初에 出現한 것이다.
당시의 수도(首都)를 가리키고 지역명(地域明)이며 지리명사가 아니다.
'毛傳'에 "中國은 京師다"라는 것이 가장 적절한 주석이다.
1912년 손문(孫文)이 중화민국을 창립한 이후
'중국'은 근대국가의 정식명칭으로서의 뜻을 가지게 되었고 정치명사이며 지리명사다.
靑末에 많은 나라가 있었고 정식은 아니지만 만청을 합해 중국이라 했다.
다만 정식 문서상의 이름은 '청국'이었다.
예를 들면
'마관조약' 일문판제2조에
"청국은 장차 아래 토지주권(요동반도, 대만팽호) 및
그 위의 성루병기제조소관물을 영구히 일본에 떼어준다"
라고 하는 것과 같다.
古代에 '中國'은 그 古都 河南의 낙양지구(洛陽地區)를 가리킨다.
'中國人'이란 낙양지구(洛陽地區)의 주민(住民)을 가리킨다.
한인이라 하면 황제의 자손인데 전설 속의 황제는 낙양분지에서 건국했다.
낙양분지가 중국 고유영토의 전부다.
그 면적은 대만에 비해 오히려 적다.
대만국의 고유영토는 중국의 고유영토에 비해 오히려 큰 것이다.
'중국'은 지역명 외에 한족이라는 인종을 가리키기도 한다.
'중국인'이 한족이라면 그 조선(祖先)을 황제로 한다.
그 조선(祖先)이 황제가 아니라면 모두 한족이나 중국인이 아니다.
漢族의 원래이름은 화하(華夏) 혹은 줄여서 하족(夏族)이라 부른다(這和夏禹의 '夏'와는 無關하다).
예를 들면
"화하가 중국의 예악을 행하지 않으면 이적으로 볼 수 있지만
이적이 중국의 예악을 행하면 중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족은 소수민족을 가리키는 것인데
일찍이 주변의 여러 번(다른 새력)에 포위되어 소멸되었다.
옛날에 화하(華夏)인종은 낙양지구(洛陽地區) 四周의 외국인을 동이(東夷)·서융·남만(南蠻)·북적(北狄) 이라불렀다.
외국인이 땅은 크고, 인구가 많아 후대에 흘러 들어와 중국을 4천 년이 넘게 통치했다.
인구가 적었던 소수의 한족은 혈통상 일찍이
다수의 이족에 녹아들어
망한 나라의 망한 인종이 된 것이다......
오늘날 중국역사는 한족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거짓역사다.
아래 분석은
중국이 자칭하는 5천 년 역사에 있어 각각의 한 시기의 통치자의 혈통의 진상이다.
--------------------------------------------------------------------
** 이 부분은 어쩔 수없는 저들의 잘못 인식된 역사의 오류를 범하는군요**
二、堯舜:
1. 堯:祁姓,陶唐氏,華夏漢人。自黃帝至堯亡 計455年,其後漢族皆爲異族統治。因堯死舜繼,舜就是東夷不是漢人。
2. 舜:姚姓,有虞氏,東夷蠻族。
六,춘추시대;
현재 중국인의 혈통은 중화민국에 있으면
作者:沈建德,
(중국내 東夷계民族 및 人口現況)
▒ 길림성 송호상 교수는
조선족, 만족, 묘, 여, 악온극, 악륜춘족(朝鮮, 滿, 苗, 黎, 鄂溫克, 鄂倫春)은
東夷族 後裔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아래글을 참고하시길 바라며 지금 중국내 동이족의 후예는
얼마나 남아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 出處 : 中國地圖冊(2001년 1月 發行 : 中國地圖出版社)
(1990년 7월 1일 현재 중국내 동이계 인구)
- 조선족(朝鮮族) :1,920,597 명
- 만족(滿族) :9,821,180 명
- 묘족(苗族) :7,398,035 명
- 리족(黎族) :1,110,900 명
이중 묘족은 해외교포만 100만이 넘는다 합니다
총 22백만이 넘는 동이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조상 찾기가 한참 진행중입니다

(길림성 송호상 교수의 치우학술대회 글중 일부 인용)
동이민족의 역사는 중국 역사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므로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의 비준으로
'동이고국 전문(전업:專業)위원회'가 산동성 제령시(濟寧市)에 설치되었으며,
1998년 4월 28일∼31일간에
이 제령시에서 전국의 동이역사학자 30여명이 참가하여
창립경축대회와 동이고국사연토회(東夷古國史硏討會)를 개최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이 동이민족은 9000년 전부터 중국 땅의 토착인으로서,
옛날에는 구환족(九桓族)(또는 구려족 : 九黎族)이라 하였고,
4700년 전 환웅시대 14대 왕 치우(蚩尤)의 전성시대
해양문화시기부터는 치우(蚩尤)족, 삼묘(三苗)족이라 불렀으며,
2700년 전 춘추시대(春秋時代)부터는
구이, 팔만, 칠융, 육적(九夷, 八蠻, 七戎, 六狄)의 민족으로 부르는 등
또다시 동서남북 이만융적(夷蠻戎狄)으로 갈라 수십 종의 민족명칭이 존재하였으나
전체적으로 구환족을 분해하여 사학자들이 만들어낸 종족명칭이었습니다.
동이민족을 말할 때 세계적으로
북극의 에스키모, 남미주의 인디안족이 다 동이족의 후칭이며,
중국의 조, 만, 묘, 려, 악륜춘, 악온극족(鄂倫春, 鄂溫克族) 역시
동이족의 후칭(後稱)입니다.
또한 중국의 삼황
- 천황·지황·인황 - (三皇 - 天皇·地皇·人皇 -) 이 동이족의 상고 시조이며,
환웅, 복희, 신농, 치우, 헌원, 고신, 환검과 요, 순, 우의 전체가 동이족의 선조였음을 고대문헌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동이족의 습속(習俗) 특성을 말하자면,
옛날 어린아이의 베개를 돌, 모래로 베웠기에 뒷골이 납작하며,
소위 문신, 몸단장으로서 앞 이빨을 뚜 대씩 뽑아버리기도 했고,
머리는 짧게 후에는 남녀 막론하고 외가닥으로 땋았습니다.
고고학자들 연구에 의하면 수천 년 후에 남은 두골(頭骨)이 톱으로 베어버린 모양이라
거치형 두골(鋸齒形 頭骨)이라 하며,
이러한 두골(頭骨)은 요령성(遼寧省)과 산동성(山東省)에서 제일 많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상고 문헌에 동이민족은 쌍각지( 脚趾)라 하여
새끼발톱이 두 조각으로 되어 있다고 했는데,
근세에 남경(南京) 남쪽 남향 우수산(南鄕 牛首山)과 구용시,
광동(句容市, 廣東) 사람들의 대다수,
강소성 일대 등의 한족들이 쌍각지( 脚趾)인 사람이 많다고 하기에
각별히 조사한 결과 사실 흔히 볼 수 있었으니,
이들은 동이족이 동화된 한족으로 보여지며,
현재에도 역시 민족으로 말하면 100%라고는 못하나
조선족, 만족, 묘, 여, 악온극, 악륜춘족
(朝鮮족, 滿족, 苗, 黎, 鄂溫克, 鄂倫春족) 등에 쌍각지( 脚趾)가 많았는데
역사의 기록대로 동이족 후예임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종족의 유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과 같이 서기전 근 8000년 동안 중국 땅을 휘몰아치던 동이민족은
제1차 치우(蚩尤)와 헌원(軒轅)의 영토 분쟁,
제2차 후국(候國)인 서주(西周)의 상(商) 침략,
3차로 이상(夷商)의 전쟁 등 민족의 내부 분열과 동족 상전(相戰)으로
중화족에게 멸망을 면치 못하였고 차츰 한족화(漢族化)되었으나,
'조상이 누구냐?' 물으면 고려(高麗)라 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땅에는 없애버릴 수 없는 수천 년 전의 역사 유물과 유적이
중국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지금 땅속 4∼5m의 깊이에서 계속 발굴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동이민족 역사의 발생지가 동방의 중국이며,
역사의 상고문헌이 중국에 있는 이상 올바른 역사를 찾으려면
그 발원지인 중국 땅에서 찾아야 설득력이 있는 역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서울의 학자들은 국내에 있는 기존 사책(史冊)의 문헌만을 반복 연구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올바른 역사가 나올 수 없고,
심지어는 동이족이 조선족이 아니라는 일부학자들도 있으니
이런 성급한 결론은 삼가함이 좋을 듯 합니다.
중국의 허다한 고대 문헌에서
동이족은 조선족이라는 논설과 문장을 어렵잖게 볼 수 있으며,
내가 쓰고 있는 「동이민족사」에는 왜 동이족을 조선족이라 하는가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제가 불철주야로 쓰고 있는 동이사, 민족사, 고고사, 문화사 등은
내가 알든 모르든, 남이냐 무었이라 하건 말건 내 나름대로 쓰고 있으며,
우리 제2세가 없어지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니
여생의 숙원이라면 올바른 역사를 완성하여 후손에게 남기려 것뿐입니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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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해외진출한 화교의 상당부분이 묘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이 얼마나 될런지...
(국내 90% 화교는 산동성 출신 - 동이의 주강역 출신이다)
우리 'O교'는 다 압니다..
우리의 피는 의심스럽지만, 순수 종족, 조선민족의 역사를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중화민족은 (모두) 허구의 족명이다
중국인은 모두 한인이 아니다.
대만인은 (那裏) 한인?
古代부터 '中國'이란 말은 西周 初에 出現한 것이다.
당시의 수도(首都)를 가리키고 지역명(地域明)이며 지리명사가 아니다.
'毛傳'에 "中國은 京師다"라는 것이 가장 적절한 주석이다.
1912년 손문(孫文)이 중화민국을 창립한 이후
'중국'은 근대국가의 정식명칭으로서의 뜻을 가지게 되었고 정치명사이며 지리명사다.
靑末에 많은 나라가 있었고 정식은 아니지만 만청을 합해 중국이라 했다.
다만 정식 문서상의 이름은 '청국'이었다.
예를 들면
'마관조약' 일문판제2조에
"청국은 장차 아래 토지주권(요동반도, 대만팽호) 및
그 위의 성루병기제조소관물을 영구히 일본에 떼어준다"
라고 하는 것과 같다.
古代에 '中國'은 그 古都 河南의 낙양지구(洛陽地區)를 가리킨다.
'中國人'이란 낙양지구(洛陽地區)의 주민(住民)을 가리킨다.
한인이라 하면 황제의 자손인데 전설 속의 황제는 낙양분지에서 건국했다.
낙양분지가 중국 고유영토의 전부다.
그 면적은 대만에 비해 오히려 적다.
대만국의 고유영토는 중국의 고유영토에 비해 오히려 큰 것이다.
'중국'은 지역명 외에 한족이라는 인종을 가리키기도 한다.
'중국인'이 한족이라면 그 조선(祖先)을 황제로 한다.
그 조선(祖先)이 황제가 아니라면 모두 한족이나 중국인이 아니다.
漢族의 원래이름은 화하(華夏) 혹은 줄여서 하족(夏族)이라 부른다(這和夏禹의 '夏'와는 無關하다).
예를 들면
"화하가 중국의 예악을 행하지 않으면 이적으로 볼 수 있지만
이적이 중국의 예악을 행하면 중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족은 소수민족을 가리키는 것인데
일찍이 주변의 여러 번(다른 새력)에 포위되어 소멸되었다.
옛날에 화하(華夏)인종은 낙양지구(洛陽地區) 四周의 외국인을 동이(東夷)·서융·남만(南蠻)·북적(北狄) 이라불렀다.
외국인이 땅은 크고, 인구가 많아 후대에 흘러 들어와 중국을 4천 년이 넘게 통치했다.
인구가 적었던 소수의 한족은 혈통상 일찍이
다수의 이족에 녹아들어
망한 나라의 망한 인종이 된 것이다......
오늘날 중국역사는 한족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거짓역사다.
아래 분석은
중국이 자칭하는 5천 년 역사에 있어 각각의 한 시기의 통치자의 혈통의 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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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千六百年歷史當中漢族被蕃族統治四千兩百年
4,600년 역사에서 한족이 번족의 통치를 받은 것이 4,200년이다.
(여기서 한족은 낙양지역의 사라져버린 한족을 말함.)
(여기서 한족은 낙양지역의 사라져버린 한족을 말함.)
一、黃帝:是傳說中的人物,不是正式歷史。傳說他 原姓公孫,因長於姬水(一說山東曲阜), 故以姬爲姓,是有熊君之次子,居於軒轅,
故又名有熊氏,號軒轅。他打敗南方君長蚩尤而被推爲領袖。據傳,有25子,其中14人得12姓,計爲:姬、酉、祁、己、?、?、任、荀、僖
、?、?、依。此12姓爲華夏、夏、漢族血緣的根源,外姓可判爲異族,亦?蠻族。後因賜姓或封地等關係,外姓也有漢族。
一. 황제;
전설 속의 인물이며 정식역사가 아니고 전설이다. 원래 성은 공손이다.
희수(일설 산동곡부)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희를 성으로 했다.
웅군이라는 차자가 있었고 헌원에 살았다.
고로 유웅씨라고도 한다. 호가 헌원이다.
남방군장 치우를 쳐서 이겨 영수에 추대되었다.
** 이 부분은 어쩔 수없는 저들의 잘못 인식된 역사의 오류를 범하는군요**
실제로 헌원은 치우천왕께 반기를 들다 연전
연패하여 수십개의 궁궐을 매일 옮겨다니며
잘 정도로 군신인 치우천왕을 두려워 했었죠.
후에 치우천왕의 비장중 한명이 우연히 전투에
패해 사로 잡힌 것을 왜곡해 오늘날까지 치우를
물리쳤노라 하고 잘못알고 있는 실정입니다.
-참고로 치우천왕은 배달국 13세 자오지천왕
이라고도 하며 우리의 배달국은 그후로도 무려
18세까지 전해 내려갔습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25아들이 있었고
그 중 14인이 12성을 얻었다.
희, 유, 기, 기, ?, ?, 임, 순, 희, ?, ?,
의. 이 12성를 화하라 한다.
'하'는 한족혈통의 근원이다. 그 외의
성은 이족으로 본다. 또한 만족이기도 하다.
후에 사성이나 봉지 등의 관계에 의한
다른 성이 한족에 있다.
二、堯舜:
1. 堯:祁姓,陶唐氏,華夏漢人。自黃帝至堯亡 計455年,其後漢族皆爲異族統治。因堯死舜繼,舜就是東夷不是漢人。
2. 舜:姚姓,有虞氏,東夷蠻族。
二. 요순시대;
1. 요;
기성, 도당씨, 화하한족 황제로부터
요가 망할 때까지 455년이다.
요가 망할 때까지 455년이다.
그 후 한족은 모두 이족의 통치를 받았다.
요가 죽고 순이 이었다.
요가 죽고 순이 이었다.
순은 동이인이지 한인이 아니다.
2. 순;
姚姓, 有虞씨 동이만족이다.
姚姓, 有虞씨 동이만족이다.
三、禹:一說偃姓,一說?姓,?陶氏,西戎或東夷。
三,우나라;
일설에 언성, 일설에 ?성, ?도씨, 서융
혹은 동이다.
四、商:東夷。
四,상나라;
동이다.
五、周:姬姓,來自西絨,今日陜西,與羌人混血。
五,주나라;
희성, 서융에서 왔다. 오늘날의 섬서,
강인과 혼혈이다.
六、春秋:
1.齊:姜姓,三苗後裔(南蠻)。
2.晉:漢人。
3.秦:西戎。
4.吳、楚、越:都是南蠻。
1.齊:姜姓,三苗後裔(南蠻)。
2.晉:漢人。
3.秦:西戎。
4.吳、楚、越:都是南蠻。
六,춘추시대;
1. 제는 姜姓 삼묘의 후예다(남만)
2. 晉은 漢人
3. 진은 서융
4. 오, 초, 월은 모두 남만이다.
2. 晉은 漢人
3. 진은 서융
4. 오, 초, 월은 모두 남만이다.
삼묘는 치우천자의 백성/남만은 남이(남쪽의 이족을 의미)
七、秦:西戎,今之藏族系,可能是?人,故後來?人符堅建國也叫秦。史家爲了區別,稱之爲 前秦。
七,진나라;
서융이다. 지금의 장족계다. 저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고로 후대에 온 저인 부견이 나라를 세우고 진이라고 불렀다.
사가들은 구분하여 前秦이라고 부른다.
(근본 저=氏 밑에 一)
(근본 저=氏 밑에 一)
서융은 서이를 말함이다
八、漢:自稱是漢人,其實?可疑。劉邦出身卑微,而當時位居公、侯、伯以上者才有族譜。沒有族譜,而中原已被外族統治兩千年,如何確
定是漢人?
八,한나라;
자칭 한인이다. 실제로는 의심스럽다.
유방은 비천한 출신이고 당시에 공, 후, 백
이상은 족보가 있었다.
족보가 없었기 때문에 중원이 외족의
통치를 받은 것이 2천 년이나 되는데
어떻게 한인임을 확정할 수 있겠는가.
남만은 남이를 말함이다
九、三國:魏不詳,蜀漢自稱是漢人,吳爲南蠻。
九삼국시대;
魏는 알 수 없다. 촉한은 자칭 한인,
오는 남만이라 한다.
十、南北朝:
1. 南朝:晉室南遷壓迫苗越,晉之血統不詳。
2. 北朝:
前?:自稱漢人。
後?:?族。
南?:鮮卑。
北?:匈奴。
西?:漢族。
前趙:匈奴。
後趙:匈奴。
前秦:?族。
後秦:羌族。
西秦:鮮卑。
前燕:鮮卑。
後燕:鮮卑。
南燕:鮮卑。
北燕:漢族。
大夏:匈奴。
成漢:?族。
北魏:鮮卑。
北齊:漢族。
北周:鮮卑。
1. 南朝:晉室南遷壓迫苗越,晉之血統不詳。
2. 北朝:
前?:自稱漢人。
後?:?族。
南?:鮮卑。
北?:匈奴。
西?:漢族。
前趙:匈奴。
後趙:匈奴。
前秦:?族。
後秦:羌族。
西秦:鮮卑。
前燕:鮮卑。
後燕:鮮卑。
南燕:鮮卑。
北燕:漢族。
大夏:匈奴。
成漢:?族。
北魏:鮮卑。
北齊:漢族。
北周:鮮卑。
十,남북조시대;
1.남조; 晉왕실이 남천하여 묘월을압박했다.
晉의 혈통은 알수 없다.
晉의 혈통은 알수 없다.
2.북조; 전량 자칭 한인, 후량은 저족,
남량은 선비, 북량은 흉노, 서량은
한족, 前趙는 흉노, 後趙 흉노,
前秦은 저족, 후진은 강족, 서진은
선비, 前燕 선비, 후연 선비, 남연
선비, 북연은 한족, 대하 흉노, 성한
한족, 북위 선비, 북제 한족, 북주 선비
흉노/강/저/선비 등은 모조리 이족(夷族)이다
十一、隋:楊堅爲北周外戚,與鮮卑混血。
十一,수나라;
양견은 북주의 외척이라 한다.
선비와의 혼혈이다.
十二、唐:李淵爲「漢」與鮮卑混血。
十二,당나라;
이연은 '한이라 하는데 선비와의
혼혈이다.
十三、五代十國:
1. 五代:
後梁:漢族。
後唐:突厥。
後晉:突厥。
後漢:突厥。
後周:漢族。
2. 十國:除北漢在山西之外,餘皆在江南,與漢族根據地中原無關。
1. 五代:
後梁:漢族。
後唐:突厥。
後晉:突厥。
後漢:突厥。
後周:漢族。
2. 十國:除北漢在山西之外,餘皆在江南,與漢族根據地中原無關。
十三,5대십국;
5대; 후량은 한족, 후당은 돌궐, 후한 돌궐,
후주는 한족
10국; 북한을 제외하고는 산서의 밖에 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강남에 있었다.
한족근거지 중원과는 무관하다.
돌궐은 북방민족 북이의 후예이다
十四、北宋:自稱爲漢族。比劉邦更可疑,因中原至此已被外族統治三千年,那來漢族?
十四,북송;
자칭 한족이라 한다. 유방에 비해 더
의심스럽다. 중원이 이에 이르기까지
외족통치 3천 년인데 ......
十五、金:西元1127年滿淸始祖女眞人?領中原。
十五,금나라;
서기 1127년 만청 시조 여진인이 중원을
점령했다.
十六、元:蒙古人,屬匈奴。
十六,원나라;
몽골인으로 흉노에 속한다.
(여기서 몽골이 흉노라면 우리도 또한 흉노
라고 볼 수있죠. 하긴 저들이 갖다 붙인 족속
이름이 시대와 왕조마다 다르게 표현했으니
종족이름만으론 정확한 분간이 힘듭니다.
-사실 흉노도 동이에서 갈려져 나간 동이의
한 부분이며 저들은 고구려마저 흉노라
불렀으니 말입니다.)
十七、明:自稱漢族。但是,比劉邦、趙匡胤的「漢」血統更可疑。
十七,명;
자칭 한족이다. 유방에 비해 조광윤의
'한'은 더 의심스럽다.
十八、淸:滿族,亦?女眞人。
十八,청;
만족, 역시 여진인이다.
十九、中華民國、中華人民共和國:血統上自稱漢人,而國籍上自稱中國人。中華人民共和國的
人口統計,公開通報的總人口12億多之中,自稱漢族人口?10億多,其餘約2億,爲滿、蒙、藏、回、苗等53個少數民族。事實上,這12、3
人口統計,公開通報的總人口12億多之中,自稱漢族人口?10億多,其餘約2億,爲滿、蒙、藏、回、苗等53個少數民族。事實上,這12、3
億人口,都不是漢族。
여진이나 흉노는 모조리 이족이다(북이/북적)
十九,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혈통상 자칭 한인,
중화인민공화국; 혈통상 자칭 한인,
국적상 자칭 중국인, 중화인민공화국의
인구통계, 공식 발표한 인구 12억여
중에서 자칭 한인인구 10억여를 점하고
그 나머지 약 2억이 만, 몽, 장, 회, 묘 등
53개 소수민족이라 하는데 사실상 12, 3억
인구가 모두 한족이 아니다.
現在,中國人的血統,在中華民國稱爲中華民族,而在中華人民共和國爲中國民族。不管如何稱呼,兩種名稱都只有政治意義而無血統
意義。根據以上的分析,漢族名存實亡,中國人的血統不是屬滿、蒙、藏、回、苗等五個主要族群,就是屬其他48個少數民族。實際上,中
國大陸30幾省的土地,自古就是這53族的固有領土,中國統治下的各民族不但應該仔細尋根,更應知道土地的歷史,向統治者討回本族的
固有領土和民族尊嚴,因爲漢族的固有領土只有洛陽盆地。中國民族、中華民族都是虛構的族名,都經不起歷史、血統的檢驗,?客是越族
,不是漢族。本網站爲了遷就卽有的錯誤,才把?客也稱爲漢人。
현재 중국인의 혈통은 중화민국에 있으면
중화민족이라 부르며, 중화인민공화국에
있으면 중국민족이라 부른다.
두 가지 명칭은 단지 정치적인 의미일 뿐,
혈통상의 의미가 아니다.
근거에 의해 분석해본 결과로는 한족이란
이름은 있으나 실제로는 없다.
중국인의 혈통은 만, 몽, 장, 회, 묘 등 5개
주요 족군과 그 밖의 48개 소수민족에
속하지 않는다.
실제로 중국대륙의 30여 성의 땅은 예로부터
53족의 고유영토였다.
한족의 고유영토는 낙양분지 뿐이다.
중국민족이라든가 중화민족은 모두 허구의
족명이다.
作者:沈建德,
留美企管博士,前中興大學企管系副敎授。現在自費專職硏究台灣主權,及相關的史地、政治、文化、血統等問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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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내 東夷계民族 및 人口現況)
▒ 길림성 송호상 교수는
조선족, 만족, 묘, 여, 악온극, 악륜춘족(朝鮮, 滿, 苗, 黎, 鄂溫克, 鄂倫春)은
東夷族 後裔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아래글을 참고하시길 바라며 지금 중국내 동이족의 후예는
얼마나 남아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 出處 : 中國地圖冊(2001년 1月 發行 : 中國地圖出版社)
(1990년 7월 1일 현재 중국내 동이계 인구)
- 조선족(朝鮮族) :1,920,597 명
- 만족(滿族) :9,821,180 명
- 묘족(苗族) :7,398,035 명
- 리족(黎族) :1,110,900 명
이중 묘족은 해외교포만 100만이 넘는다 합니다
총 22백만이 넘는 동이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조상 찾기가 한참 진행중입니다

(길림성 송호상 교수의 치우학술대회 글중 일부 인용)
동이민족의 역사는 중국 역사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므로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의 비준으로
'동이고국 전문(전업:專業)위원회'가 산동성 제령시(濟寧市)에 설치되었으며,
1998년 4월 28일∼31일간에
이 제령시에서 전국의 동이역사학자 30여명이 참가하여
창립경축대회와 동이고국사연토회(東夷古國史硏討會)를 개최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이 동이민족은 9000년 전부터 중국 땅의 토착인으로서,
옛날에는 구환족(九桓族)(또는 구려족 : 九黎族)이라 하였고,
4700년 전 환웅시대 14대 왕 치우(蚩尤)의 전성시대
해양문화시기부터는 치우(蚩尤)족, 삼묘(三苗)족이라 불렀으며,
2700년 전 춘추시대(春秋時代)부터는
구이, 팔만, 칠융, 육적(九夷, 八蠻, 七戎, 六狄)의 민족으로 부르는 등
또다시 동서남북 이만융적(夷蠻戎狄)으로 갈라 수십 종의 민족명칭이 존재하였으나
전체적으로 구환족을 분해하여 사학자들이 만들어낸 종족명칭이었습니다.
동이민족을 말할 때 세계적으로
북극의 에스키모, 남미주의 인디안족이 다 동이족의 후칭이며,
중국의 조, 만, 묘, 려, 악륜춘, 악온극족(鄂倫春, 鄂溫克族) 역시
동이족의 후칭(後稱)입니다.
또한 중국의 삼황
- 천황·지황·인황 - (三皇 - 天皇·地皇·人皇 -) 이 동이족의 상고 시조이며,
환웅, 복희, 신농, 치우, 헌원, 고신, 환검과 요, 순, 우의 전체가 동이족의 선조였음을 고대문헌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동이족의 습속(習俗) 특성을 말하자면,
옛날 어린아이의 베개를 돌, 모래로 베웠기에 뒷골이 납작하며,
소위 문신, 몸단장으로서 앞 이빨을 뚜 대씩 뽑아버리기도 했고,
머리는 짧게 후에는 남녀 막론하고 외가닥으로 땋았습니다.
고고학자들 연구에 의하면 수천 년 후에 남은 두골(頭骨)이 톱으로 베어버린 모양이라
거치형 두골(鋸齒形 頭骨)이라 하며,
이러한 두골(頭骨)은 요령성(遼寧省)과 산동성(山東省)에서 제일 많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상고 문헌에 동이민족은 쌍각지( 脚趾)라 하여
새끼발톱이 두 조각으로 되어 있다고 했는데,
근세에 남경(南京) 남쪽 남향 우수산(南鄕 牛首山)과 구용시,
광동(句容市, 廣東) 사람들의 대다수,
강소성 일대 등의 한족들이 쌍각지( 脚趾)인 사람이 많다고 하기에
각별히 조사한 결과 사실 흔히 볼 수 있었으니,
이들은 동이족이 동화된 한족으로 보여지며,
현재에도 역시 민족으로 말하면 100%라고는 못하나
조선족, 만족, 묘, 여, 악온극, 악륜춘족
(朝鮮족, 滿족, 苗, 黎, 鄂溫克, 鄂倫春족) 등에 쌍각지( 脚趾)가 많았는데
역사의 기록대로 동이족 후예임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종족의 유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과 같이 서기전 근 8000년 동안 중국 땅을 휘몰아치던 동이민족은
제1차 치우(蚩尤)와 헌원(軒轅)의 영토 분쟁,
제2차 후국(候國)인 서주(西周)의 상(商) 침략,
3차로 이상(夷商)의 전쟁 등 민족의 내부 분열과 동족 상전(相戰)으로
중화족에게 멸망을 면치 못하였고 차츰 한족화(漢族化)되었으나,
'조상이 누구냐?' 물으면 고려(高麗)라 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땅에는 없애버릴 수 없는 수천 년 전의 역사 유물과 유적이
중국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지금 땅속 4∼5m의 깊이에서 계속 발굴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동이민족 역사의 발생지가 동방의 중국이며,
역사의 상고문헌이 중국에 있는 이상 올바른 역사를 찾으려면
그 발원지인 중국 땅에서 찾아야 설득력이 있는 역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서울의 학자들은 국내에 있는 기존 사책(史冊)의 문헌만을 반복 연구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올바른 역사가 나올 수 없고,
심지어는 동이족이 조선족이 아니라는 일부학자들도 있으니
이런 성급한 결론은 삼가함이 좋을 듯 합니다.
중국의 허다한 고대 문헌에서
동이족은 조선족이라는 논설과 문장을 어렵잖게 볼 수 있으며,
내가 쓰고 있는 「동이민족사」에는 왜 동이족을 조선족이라 하는가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제가 불철주야로 쓰고 있는 동이사, 민족사, 고고사, 문화사 등은
내가 알든 모르든, 남이냐 무었이라 하건 말건 내 나름대로 쓰고 있으며,
우리 제2세가 없어지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니
여생의 숙원이라면 올바른 역사를 완성하여 후손에게 남기려 것뿐입니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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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해외진출한 화교의 상당부분이 묘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이 얼마나 될런지...
(국내 90% 화교는 산동성 출신 - 동이의 주강역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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