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古조선사

수메르족의 기원

블루후아 2005. 5. 27. 21:24
기원이 밝혀지지 않은 신비의 민족
(명지대학교 아랍지역학과 조희선교수님홈에서)

수메르 사람들은 분명하지는 않으나 대략 기원전 4500년에서 4000년 사이에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의 평야에 나타나 살기 시작하였다. 인간이 사용한 도구로 시대를 구분하는 통상적인 시대구분법에 따른다면 이때는 목축과 농경생활이 막 시작된 신석기시대였다. 메소포타미아 평야지대에는 수메르인들이 들어오기 이전에 셈어족과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여러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수메르인들은 이들 보다 우월한 문화를 지니고 이주하여 이내 이들을 압도하고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수메르인들이 어디에서 기원한 민족인지, 그리고 이들의 초기 역사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분명한 정설이 없다. 이들의 기원이 매우 불명확한 반면, 이들이 남긴 문화 유산이 너무도 두드러지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수메르인들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신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 내가 읽은 책 가운데 한 권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는 것도 있었다.

"수메르 문헌의 제시된 증거에 기초해 볼 때, 기자의 피라미드는 시나이 사막에 위치한 우주 기지에서 끝나는, 우주관제센터의 착륙복도의 일부로서 외계인들에 의해 유도 장치로 쓰일 목적으로 건설된 듯 하다"

이글의 저자에 따르면 고대 수메르인들은 태양계의 일곱 번째 행성인 지구를 일종의 행성간 버스 정거장으로 사용했던 우주 여행자들의 자손으로서 이들이 바로 이집트의 기자에 있는 대피라밋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수메르인의 기원에 관한 이 저자의 추리는 바로 다음과 같은 의문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모든 것의 이전'이었던 문화가 갑자기 등장하여 복잡한 문자, 경제체제, 그리고 잘 구성된 사회구조를 완벽하게 갖출 수 있었을까?"

이 저자에 따르면 수메르인들의 문화적 유산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당시 겨우 석기를 사용하던 원시시대 인간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고도의 첨단문명을 가지고 외계에서 이주해온 우주인들의 것이라고 생각해야만 합리적으로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수메르인들의 업적이 매우 뛰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이 글의 필자가 생각한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수메르인들의 역사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알게 되겠지만, 그것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부단한 실험과 개량을 통해 단계적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교착어를 사용한 검은 머리의 사람들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을 "검은 머리의 사람들"(black-headed people)이라고 불렀으며, 자신들이 사는 땅을 수메르(Sumer)라고 불렀다. 수메르인이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지만, 이 말의 원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는 설이 없다. 분명한 것은 이들의 생김새가 주위에 있던 셈어족이나 인도유럽어족의 여러 민족들하고는 매우 달랐으며, 수메르인들 자신은 이러한 생김새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자기 민족을 주위 민족들과 구분해 불렀다는 것이다.

이들의 언어 역시 주위의 민족들이 사용하던 것하고는 매우 달랐다. 그들의 언어는 명사에다 토씨를 바꿔서 주어나 목적어로 표현하는 교착어(agglutinative)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것은 지금 우리말이 속해있는 우랄 알타이언어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수메르인들이 검은 머리칼을 지니고 있었고, 교착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동양의 일부 사학자들은 이들을 동아시아의 민족들과 연관시키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학설들을 제시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른 바 "재야사학자"들 중에 수메르인을 우리 한민족과 연관시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라는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서에 따르면 단군 이전에 한민족이 세운 12개의 나라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로 수밀이(須密爾)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재야 사학자들은 바로 이 수밀이국이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던 그 수메르국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수메르 역사를 정통으로 연구해 온 서양학자들은 수메르민족의 기원을 오늘날의 동아시아 민족들과 연계시키는데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사무엘 크레이머는 수메르인들 자신들은 처음부터 메소포타미아에 태어나 그 곳에서 살아온 것으로 믿었다고 말한다. 저명한 아랍사학자인 히티(Philip K. Hitti)는 수메르어가 터키어, 헝가리어, 핀란드어 등에서 발견되는 교착어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점을 제외한 다른 어떤 특성도 이들 언어 또는 기타의 우랄 알타이어나 몽고어와 비슷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각종 부조물에 나타난 수메르인들의 생김새를 보아서는 그들이 긴 머리의 지중해 인종과 넓은 이마의 북동부 산악지대인인 아르메니아족과의 혼혈로 보여진다고 말하고 있다.

수메르 유적 발굴에 지대한 공을 세운 고고학자 레오나드 울리(Leonard Woolley)와 역시 고고학자인 독일인 세람(C. W. Ceram) 등은 수메르인들이 계단 모양의 신전을 만들어 그 곳에 신을 모신 것을 본다면 산악지대가 그들의 고향으로서 신들은 높은 언덕 위에 산다고 생각한 것 같으며, 수메르 축조물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 목조건물 양식에 따라 지어져 있는 점으로 보아 나무가 무성한 고지대가 그들의 발원지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인류학자인 영국인 아더 케이트(Arthur Kate)는 인더스강 계곡이 수메르인들의 발원지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주장들은 아직까지 어느 것이 맞다고 분명히 말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어쨌거나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을 이룩한 수메르민족이 지금의 중동 민족들과 같은 뿌리를 가진 민족이 아니고 어찌 보면 우리 민족과 관련이 깊을 수도 있다고 하는 점은 우리에게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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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메르인들은 한국인들이다.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History Begins at Sumer)>의 저자로 유명한 사뮤엘 크레머 교수는
최초의 창조설화를 비롯한 교육제도, 사법제도 등 인류 최초의 39개 사건이 모두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펀주: 수메르문명 -> 에게문명 -> 이집트,그리스)
수메르인들이 살던 지역은 지금의 이라크 지역을 의미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배우는 인류문명의 4대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메소포타문명은 말 그대로 'meso-potamia'로 양강(兩江) 사이란 뜻이다.
양강이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성서에 나오는 '에덴'동산으로 불리는 딜문동산도 바로 이 양강 사이에 있는 지역이며, 이 동산마저 이번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지금 북한 학자들은 '대동강문명'이라고 하여 검은머루 유적지 발견 이후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더 오래 된 문명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한 무리의 인간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 정착하기 시작한다.
이 한 무리의 인간들을 '수메르인 Sumerian'이라고 하며 그 뜻은 '검은 머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양강 지역에 올 때 문자와 학교제도와 법제도 등 고급문화를 이미 가지고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도대체 어디서 있다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이주해 왔느냐이다.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겨져 있는 이 수메르인들의 유래 문제를 소위 '수메르 문제 거리 Sumer Problem'라 할 정도이다.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문명도 수메르보다 무려 1000년 이후의 것이며,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문명도 그와 비슷한 후기 문명이다.
수메르인들이 가지고 온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문명으로, 그 당시 지금의 히브리인들은 말 그대로 'Habiru'로 그 말의 의미는 '떠돌이' 혹은 '산적'의 의미 등을 갖는다.
수메르인들이 설형문자라는 것을 사용할 당시 히브리인들은 문자도 없었으며 옷이란 동물 가죽을 벗겨 입고 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수메르인들은 직조기술을 발견하여 이미 옷을 물들여 입고 다녔다.
건축술도 발달하여 2층 가옥을 지을 정도였다.
지금 발견되고 이번 전쟁으로 도난당한 토판들은 거의 경제거래 문서들로서 이는 거래를 한 다음 남긴 계약문서들이다.
한국의 강신택 교수는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분야의 연구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1830년대 처음으로 이라크에서 수메르 문자가 발견되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은 기독교였다.
왜냐하면 가장 최초의 사건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생겼을 것이라 여겨져 왔고 에덴동산도 그 지역 어딜 것이라 믿어 오던 터에 창세기의 창조설화와 홍수 설화 등이 수메르의 토판 속에 그대로 그 원형이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 남자와 여자가 있었고, 동산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 그런데 슈메르에서는 여자가 아닌 남자가 먼저 따먹는 다는 둥
그리고 홍수가 사람들이 다 죽는 데 지아슈드라는 의인이 있어서 배를 만들어 사람들은 구제한다는 둥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급문화 수메르에 대하여 히브리 문화를 저급문화로 분류한다.
서양문명은 그리스의 합리적 이성과 히브리의 감성적 신앙이라는 두 물줄기로 이루어진다.
이 두 물줄기는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 만난다.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르 우르 남무 왕국이 멸망하면서 슈메르 문명은 두 갈래로 갈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올림푸스 신전의 원형이 수메르의 딜문 동산의 그것이라고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히브리인들의 정신적 유산은 그대로 수메르의 것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러면 이라크가 저렇게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인류 문명의 정신적 고향이 황폐화되거나 말살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슈메르어(발음)[ 뜻]